47장. 그 뒷모습이 너라면

by 달이음

현우는 언제부턴가 하늘을 향해 평생 해본적 없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람이가 무사하길 바랍니다. 그녀와 다시 만나게 해주세요"

이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나님.. 현우가 저 때문에 아직까지 아파하지 않길, 원망하지 않길 바래요.. 그리고.. 꼭 다시 만나게 해주세요.."

그들의 기도는 그렇게 외침이 되어 하늘을 향해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몇년의 시간이 흐린 뒤.

짧은 출장 일정으로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한 현우는
현지 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사람의 하루를 담는’ 사진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관광지보다는 생활의 온기가 느껴지는 작은 골목, 벤치, 시장 근처를 주로 다녔다.

그날도 한적한 오후였다.
오랜 시간 머물던 어느 작은 마을의 공원.
잔잔한 햇살이 비치는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사람은 짧은 단정한 단발머리를 한 여성이었고,
그 옆엔 긴 머리를 묶은 사이로 귀에 기기를 착용한 듯한 젊은 여성이 있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앉아 아무 말 없이 종이 위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그 뒷모습 어딘가가 이상하게 익숙했다.

현우는 조심스레 셔터를 눌렀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 짧은 단발머리가 흩날렸고
햇살이 그녀의 머리 끝에 닿으며 반짝였다.

‘…어디선가 본 듯한 손동작, 머리카락, 목선…’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또 내가 착각하고 있겠지.”

촬영을 마친 후 숙소에 돌아와 하루치 사진을 정리하던 밤.
모니터 속 그 한 장에서 현우의 손이 멈췄다.

그녀의 손과 그녀의 뒷모습.
첫 고백을 나누던 날 꼭 잡았던 그 손과 수천 번도 넘게 마음속에서 그렸던 그 뒷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녀 옆의 여성.
그녀는 이람의 사촌동생 이진이었다.

순간 현우는 숨을 삼켰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이람이다.”

사진을 뚫어져라 보며 그는 중얼거렸다.
“드디어… 찾았다.”



이튿날 그는 사진이 찍힌 장소로 다시 향했다.
어제와 비슷한 시간, 비슷한 자리.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목에 건 채 벤치 근처를 서성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오늘은 이진과 함께 걷고 있었고,
이람은 이진이 떨어뜨린 손수건을 주워 들며 조용히 웃고 있었다.

현우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몇 걸음도 떼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춰섰다.
이람이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마주했을 때 시간이 멈춘 듯했다.

서로의 얼굴에는 수많은 계절이 지나간 흔적이 서려 있었고,
그러나 그 눈빛은 여전히 그날의 그 마음 그대로였다.

현우는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디뎠다.

“…이람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가볍게 감고 입술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진의 손을 꼭 잡고 현우를 향해 몇 걸음 다가왔다.

말보다 눈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한 그 순간.

세 사람 사이에 흘렀던 공기에는
그동안의 아픔, 그리움, 그리고 다시 만난 안도가 조용히 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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