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서 나온다
아직도 모르겠다.
나에게 관심이 있다며 다가오는 사람을 보아도,
마음 한편에서는 끝내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나의 첫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왔던 그날,
누군가 나를 녹여주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온기가 아니라 잠깐의 착각이었고,
그런 장면은 늘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었다.
믿음을 주면 떠날 것 같고,
사랑을 건네면 잃을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자꾸 한 발 늦게 다가가고,
한 발 먼저 물러선다.
아직 나에게 인연이 오지 않아서 이런 걸까.
아니면 정말 인연이 와도, 이런 내가 너무 빨리 물러서버리는 걸까
내가 이 상태라면 그 사람은 끝까지 버텨줄 수 있을까.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어쩌면 온전한 정신으로 사랑을 하는 사람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사랑하며 느끼는 불안과 안정, 믿음과 실망, 질투와 집착,
그 모든 감정을 동시에 끌어안고서
제정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지금도
이렇게 불안정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지금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
타인을, 혹은 타인 속에 비친 나를,
아니면 내가 나라고 정의해 온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는 걸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붙잡고 있는 걸까.
나는 다시 사랑을 믿을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다못해 나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다.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누군가를 알아가고
어떻게 나를 보여줄 수 있을까.
사람들은 대체 나의 무엇을 보고 다가오는 걸까.
겉으로 보이는 껍데기일까,
아니면 내가 애써 숨기고 있는 무언가일까.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내면, 썩어빠졌다고 느껴지는 그 깊은 곳까지
도망치지 않고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의 불안과 병적인 마음까지도
짐처럼 내려놓지 않고 함께 들어줄 수 있는 사랑.
고쳐주려 들지 않고,
이해하지 못해도 떠나지 않는 사랑.
그런 사랑이 있다면
비로소 나는 다시 믿어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나 자신을 돌봐야 한다는 것도 안다.
이 추운 계절에서 나와야 한다는 사실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당장 무엇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다.
그래서 나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억지로 따뜻해지지도,
누군가에게 기대어 봄을 앞당기지도 않기로 했다.
그저 계절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이다.
나는 나대로 나의 할 일을 하며
조용히 살아간다.
의심을 품은 채로,
불안을 안은 채로,
나를 포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억지로 봄을 만들지 않고,
언젠가 내가 스스로 봄을 발견하게 되기를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