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 씨의 만물상점 #2
어서 오세요, 성수 씨의 만물상점입니다.
오늘 두 번째로 꺼내놓는 이야기는, 돌아가신 저희 시아버님께서 남기신 '사랑의 흔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가끔, 곁에 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마음들을, 그 사람이 떠나고 난 뒤에야 비로소 발견하곤 합니다.
말로 다 표현되지 못했던 사랑이, 어느 날 문득, 낡은 편지 봉투 속에서, 혹은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 가지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그 사랑과 마주하게 될까요?
지금부터,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 시아버님의 따뜻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며칠 뒤, 어머니가 낡은 편지 봉투 하나를 발견하시고는 저를 부르셨어요.
"어미야, 이것 봐라. OO 첫돌 때 잡은 연필이네."
시아버님의 유품을 정리하시던 중이었죠. 봉투 위에는 아버님의 꾹꾹 눌러쓴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OO 돌잡이 연필'. 그 안에는 제 아들이 첫돌 때 잡았던 작은 연필 한 자루가 소중하게 담겨 있었어요.
손주의 첫 발걸음을, 그 아이가 커서 무언가를 쓰고 배우게 될 먼 미래를, 말없이 응원하고 싶으셨던 할아버지의 그 따뜻한 마음을, 우리는 아버님께서 떠나시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집안 곳곳에서 아버님의 사랑의 흔적을 발견하곤 해요.
5년 전, 감을 유난히 좋아하셨던 아버님은 작은 감나무 한 그루를 심으셨어요. 그 나무는 2년간 열매를 맺지 못하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그해 가을에야 서너 개의 작은 열매를 겨우 맺었습니다.
그런데 올가을, 그 감나무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감이 주렁주렁 열렸어요. 어머니는 아이처럼 기뻐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요. 아버님께서 그토록 보고 싶어 하셨던 이 풍경을, 당신은 끝내 보지 못하셨다는 것을요. 당신이 좋아하시던 그 감을, 식구들과 함께 나눠 먹는 소박한 기쁨은 이제 누릴 수 없다는 것을요.
그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를 보며, 저는 문득 스피노자의 명언을 떠올렸습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아버님께서 심으신 것은 단순한 감나무가 아니었어요. 그것은 당신이 떠난 뒤에도, 남겨진 가족과 자손들이 함께 나누어 먹을, 미래를 향한 '사랑'이자 '희망'이었습니다. 손주가 어른이 되어 글을 쓰게 될 먼 미래를 위해 낡은 봉투 속에 연필을 간직하고, 당신은 맛보지 못할지라도 자손들이 먹게 될 달콤한 열매를 위해 묵묵히 나무를 심었던 분이셨죠.
이번 주말, 우리는 함께 모여 감을 딸 예정이에요. 아마도 감을 따면서, 우리는 내내 아버님을 기억하게 되겠죠.
당신이 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심었던 그 나무가, 지금 우리를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있으니까요.
당신의 시간은 멈췄지만, 당신의 사랑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랑의 흔적을 남기시겠어요?
첫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e4195875ebe247f/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