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바른 소리'가 뭐예요?

성수 씨의 만물상점 #18

by 김성수

어서 오세요, 성수 씨의 만물상점입니다.


오늘 진열장에서 꺼내볼 물건은, 빛바랜 제 중학교 시절 앨범 속, 아주 사소했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어느 날의 기억입니다. 자신의 말의 책임에 관한 배움이었습니다. 말의 무게감, 책임감, 그리고 결과.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저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친구들과는 두루두루 잘 어울렸죠.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 반장에게 자료를 나눠주며, 특정 날짜까지 모두 취합해 오라고 지시하셨어요. 그런데 반장은 마감 날짜를 아이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고, 결국 저희 반은 자료 제출이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담임선생님께 크게 혼이 난 반장은, 선생님이 나가시자마자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제대로 전달했는데, 애들이 협조를 안 해줘서 그런 거야."

저는 참을 수가 없었어요. 사실이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반장, 그건 아니지. 네가 날짜를 정확히 말 안 해준 거잖아. 왜 우리 탓을 해?"


순간 반 전체가 조용해졌고, 반장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으락푸르락 굳어졌어요. 그 친구는 저를 노려보며 쏘아붙였습니다.

"너, 입바른 소리 하지 마!"

'입바른 소리?'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도무지 그 뜻을 알 수가 없었어요. 맞는 말을 했는데 왜 화를 내는 건지, 그 상황이 억울하기만 했습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저는 아빠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으며 물었습니다.

"아빠, 도대체 '입바른 소리'가 뭐예요? 제가 뭘 잘못한 거죠?"


아빠는 잔뜩 골이 난 제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으신 뒤, 빙그레 웃으시며 '입바른 소리'의 사전적 의미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어요. 그리고 저에게 조언을 해주셨죠.


"성수야, 네 말이 사실이었으니 틀린 건 아니란다. 하지만 네 말이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그걸 듣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으면, 그건 그냥 아픈 비난이 될 수도 있단다. 똑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있는 법이야."


아빠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저는 반장이 왜 그토록 화를 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저의 '옳음'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 친구에게는 날카로운 '망신'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억울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는 동시에, 알 수 없는 무게감이 가슴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반장 무리에게서 은근한 따돌림을 당해야 했습니다. '바른 소리'의 대가는 꽤 컸습니다. 하지만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제 곁에는 이해해 주는 친구들이 남았으니까요.


그 은근한 견제도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중학생 또래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요. 며칠 서먹하다가도 어느새 또 어울리고, 시간이 지나면 서로에게 적응해 가면서 자연스럽게 풀어지기 마련이니까요.


무엇보다, 그 경험 덕분에 저는 말하는 방법과 지혜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다정한 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로 성장했으니까요.


그해 열네 살의 저는, '옳은 말'을 하는 용기만큼이나 그 말을 '지혜롭게' 전달하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프게 배웠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저는 여전히 '팩트'와 '공감' 사이에서 서툴게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휘청거릴 때마다, 그날 아빠가 건넨 따뜻한 가르침이 저를 잡아주는 평형수가 되어줍니다.


오늘도 저는 이 빛바랜 기억을 만물상점 진열장에 소중히 간직합니다.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 제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말의 무게를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이 기억이 제게 준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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