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밤, 내가 나로 돌아오는 시간

‘행복해’라는 말은, 나의 마지막 인사이자, 나 자신을 놓아주는 말

by 진하준

우리는 종종 너무 늦게서야 이별을 마주한다.

이별이라는 단어가 갖는 물리적인 단절보다는, 감정의 느슨한 끝에서 서서히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을 더 오랫동안 끌어안는다.

그러다 결국, 더는 안 되겠다는 심장의 외침이 들려올 때, 비로소 우리는 말없이 밤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그 밤은, 늘 잔인하다. 사랑은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서 울고 있지만, 더는 붙들 수 없다는 걸 아는 순간.

나는 네게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다.

헤어짐이란 언제나 명확한 마침표보단, 서로 눈을 피하는 쉼표 같은 거니까.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우리가 공유했던 시간들은 너에게는 잠시 머물다 간 계절이었을지 몰라도, 내겐 사계절을 통째로 삼킨 한 시대였다.

나는 한동안 나를 잃은 채로 살았다.

너를 잃은 것이 아니라, 너를 품고 있던 나를 잃은 거였다.

심야의 방 안, 벽에 걸린 그림자 하나가 흐느끼고 있었고, 나는 그게 내 그림자인 줄도 몰랐다.

왜 그렇게 외로웠는지, 왜 그토록 미련을 놓지 못했는지. 이제는 안다.


너는 나의 거울이었다. 너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았고, 너의 감정에 나의 존재를 걸었다.

그래서 네가 나를 외면하는 순간, 나는 마치 투명인간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빛이 되길 바라지만, 때로는 그 빛조차도 나를 눈부시게 만들어 결국 시선을 돌리게 된다.

이별의 밤을 지나며 나는 깨달았다.

내 어둠을 누가 대신 밝혀주기를 바랐던 건,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 나는 나의 어둠을 내가 감당하고, 그 안에서 서서히 밝히기로 했다.

누군가의 손을 붙들지 않고도, 나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을 조금씩 기르기로.


마지막이 되어서야 나는 알았다. 사랑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손잡아 줄 수 있을 때 따뜻하게 잡아주고, 말해줄 수 있을 때 솔직하게 말하는 것.

나에게 부족했던 건 진심이 아니라, 그 진심을 표현할 용기였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내가, 이젠 사랑한다고 말할 사람을 찾지 않는다.

그보다는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본다.

고백은 대상이 아니라, 내 안의 감정이 나를 향해 건네는 위로일 수도 있으니까.


그때는 몰랐다. 마지막 순간까지 네게 “행복하라”는 말을 남긴 이유가, 나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였다는 것을. 진심으로 너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과, 내 슬픔을 떼어놓으려는 욕심이 뒤섞인 말이었다는 걸. 지금은 안다.


‘행복해’라는 말은, 나의 마지막 인사이자, 나 자신을 놓아주는 말이었다는 걸. 더 이상 너를 그리워하지 않겠다는, 내 마음의 결단이었다는 걸.


네가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던 밤들, 나보다 먼저 웃고 먼저 울던 너의 얼굴, 그 모두가 거짓이 아니었다는 걸 나는 믿는다.

우리의 마음이 교차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같은 밤을 같은 온도로 지나갔던 적은 분명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지금의 나는 말할 수 있다.


네가 남기고 간 자리를 오래도록 비워두었다. 누구도 대신하지 못하도록, 나조차도 쉽게 잊지 않도록. 하지만 이제는 나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너로 가득했던 나의 하루를 이제 비워내고, 그 자리에 나 자신을 다시 앉히는 것.

너무 오래 너의 무늬로 채워졌던 내 안을, 조금씩 다시 그려가는 것.


한때 나는 나를 너무 탓했다. 사랑받지 못했던 이유를, 혼자만 애썼던 이유를.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누군가의 마음이었다는 걸.

나의 사랑은 실패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방식으로 끝났을 뿐이다.

그리고 그 끝이 나를 다시 시작하게 만들었다는 걸.


나는 다시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어쩌면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었을 때. 하지만 그때는 예전처럼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 나를 구원하길, 누군가가 나의 어둠을 밝혀주길. 대신, 내 사랑이 나를 구하고, 내 어둠을 내가 감싸안을 수 있길 바란다. 그래야 진짜 사랑이 시작될 수 있을 테니까.


이별은 끝이 아니라 통과의례다. 사랑의 무게만큼 슬픔도 크지만, 그 슬픔의 끝엔 언제나 나 자신이 남는다. 내가 누구였는지를, 무엇을 바랐는지를, 어떻게 살아가고 싶었는지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별의 밤은 길고 어두웠지만,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로 돌아왔다.

눈물로 닦여진 얼굴이, 거짓 없이 내 진심을 비춰주었다. 이제 나는 울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 나의 어둠을 밝히는 법을 배웠으니까.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나로 살아가기로 결심했으니까.

그래, 이별의 밤은 슬프지만 결국, 내가 나로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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