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화- 미래의 목소리
창문을 열자 싸늘한 바람이 방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낮인지 밤인지 구분할 수 없는 회색빛 하늘은, 마치 시간의 경계가 무너진 듯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책상 위에 놓인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늘은 열세 번째 장. 책장은 이미 스스로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 한 줄의 문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네 미래다.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것, 그리고 네가 아직 모르는 너.”
심장이 순간 멎은 듯했다.
그 목소리는 분명 내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내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아닌, 언젠가 살아가야 할 또 다른 나의 목소리였다. 낮게 울리는 톤, 지쳐 있지만 단단히 버티는 울림. 나는 본능적으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거울을 향해 다가갔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나였다. 하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눈가엔 깊은 주름과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입술은 무겁게 굳어 있었다. 내가 아닌데도, 너무도 익숙한 낯선 얼굴.
“나는 네가 만든 길 위에 서 있다.”
목소리가 거울 속에서 흘러나왔다.
“너의 침묵, 너의 후회, 네가 외면했던 순간들. 그것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너는 네가 누구인지 알았다고 믿었겠지. 하지만 사실 너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직면하지 않았다.”
나는 무겁게 숨을 몰아쉬었다.
머릿속에는 과거의 선택들이 잇따라 스쳐 지나갔다. 하지 못한 고백, 끝내 붙잡지 못한 인연,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했던 꿈들. 그때마다 나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계속 쌓이며 미래의 나를 만들고 있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책을 향해 물었다. 마치 대답이라도 돌아올 것처럼.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목소리가 울렸다.
“너는 늘 내일로 미뤄왔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겠다고. 하지만 기억해라. 내일은 약속된 시간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네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나는 달라진다.”
그 말에 나는 손을 떨며 책장을 넘겼다. 종이의 가장자리는 낡은 지도처럼 거칠었고, 글씨는 바람결처럼 희미하게 흔들렸다.
“미래는 멀리 있지 않다. 매 순간의 네 선택 속에 이미 숨 쉬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미래란 거대한 강처럼 멀리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말하지 않은 한마디, 외면한 사람의 눈빛, 용기 내지 못한 단 한 걸음. 그것들이 모여 언젠가 내 얼굴, 내 목소리를 바꿔 놓는다.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서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나는 알았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미래 그 자체가 아니라, 지금의 나였다. 지금 이 순간의 무책임과 망설임이 미래의 나를 옭아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천천히 속삭였다.
“앞으로의 나는… 어떤 목소리로 나를 부를까?”
오늘은 열세 번째 날이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미래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