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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끼가 바꿔놓은 인생

by 담유작가




오른쪽 눈의 쌍꺼풀 위가 빨갛게 부어 있었다.


‘다래끼가 시작되려는구나.’


나의 눈다래끼의 역사도 이제는 제법 유구하다. 한 해를 다래끼 없이 넘어가면 감사 기도를 올릴 판이다.


30대 초반엔 일년 내내 다래끼와 동거했던 적도 있었다. 왼쪽이 가라앉으면 오른쪽에 올라오고, 위가 나았다 싶으면 아래에서 다시 돋아났다. 결국 그 해는 안경으로 버텼다.


렌즈 착용 때문인가 싶어 라섹수술까지 했지만, 다래끼는 여전히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동네 병원에서 해결이 안돼 큰 병원까지 몇 군데나 돌아다녔고, 째는 시술도 여러 번 받았다. 나중에는 마취 없이도 거뜬할 정도였다. 겉다래끼, 속다래끼, 콩다래끼… 이제 웬만한 안과 의사만큼 종류도 잘 안다.




그 시절의 다래끼는 내 인생까지 살짝 비틀어 놓았다.


유난히 소개팅이 몰리던 때였다. 한 남자의 애프터를 다래끼 때문에 몇 번 미루자 그는 거절로 받아들였는지 연락을 끊었다. 또 한번은 도저히 팅팅 부은 눈으로 나갈 수 없어 친한 언니에게 대타를 부탁했는데, 그 언니는 결국 그 자리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까지 했다. 내 다래끼가 남의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다.




오늘의 다래끼는 이대로 조용히 가라앉아주길 바란다. 좋든 나쁘든 이런 작은 이벤트 하나가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겠지만, 나이가 드니 이제는 그런 우연조차 피곤하다.




약국에서는 내가 많이 지친 것 같다며 푹 자라고 했다.


오늘 사온 안약을 두 세 방울 떨어뜨리고 일찍 누워야겠다.


내일이면 말끔히 가라앉을 눈을 기대하며.



#다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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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에피소드

#우연과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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