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의 문단속>
재난 삼부작의 마지막 열쇠
<스즈메의 문단속> ★★★★☆
'건너면 돌아오지 못하는 문,
건너지 못하는 문으로 너라는 나에게'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은
‘신카이 마코토’의 재난 삼부작 중 마지막 작품으로
주인공 '스즈메'가 토지시인 '소타'와의 사건에 얽히며,
재난을 막아 사람들을 구하는 이야기이다.
'스즈메의 문단속' 속 세계관은
우리의 일상과 붙어있으면서도,
토지시라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에게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영화의 막바지, 퍼즐들이 맞춰지며
연쇄적으로 새로운 질문들이 생겼다.
그러한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해보았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세계관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속 특이한 세계관의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지만
그중 특별한 하나를 꼽자면,
스즈메 속 죽은 사람들만이 갈 수 있다는 '저세상'을 꼽을 수 있겠다.
스즈메의 고향이 저세상에서 불바다가 되어있는 모습은,
고향이 쓰나미의 피해를 입은 모습을
그대로 가진 것과 대비되게도
마을 전체에 불이 난 모습이다.
이러한 점은, 저세상이 죽은 사람만의 장소임과 동시에 현세와의 대비,
사람의 내면 속 아픔 그 자체인 지옥과 같은 장소임을 나타낸다.
마을의 감정을 느끼는 부분에서 '다녀올게'와 같은 말들이 나온 이유.
소타는 스즈메에게 문을 닫을 때,
그곳의 감정들을 상상하고 읽어야,
그제서 열쇠가 나온다고 알려준다.
그렇다면 마을의 감정을 느끼는 부분에서
우리의 일상 속, 문 앞에서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며 인사를 하는 것은
매번 자각하진 않지만,
보내는 이에게는.
사랑하는 이에게 느끼는 애틋한 감정,
별 탈 없이 다녀오길 바라는 마음이.
매번 자각하진 않지만,
떠나는 이에게는.
오늘 하루의 힘을, 내일의 원동력을 받는 것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우리의 일상 속 잘 보이진 않지만,
가장 애틋한 감정을
이러한 장면으로 보여주려 하였다.
스즈메의 문단속의 특별한 점은 재난 영화임에도 재난의 표면적인 부분이 아닌.
재난이 이끄는 자연적 상호작용을 내포하고 있다.
영화에서 미미즈가 봉인될 때, 공통된 점이 있다.
바로 미미즈가 있던 자리에 비처럼 물이 하늘에서 내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이라는 소재는 왜 이런 상호작용을 하는 것일까.
작품 속, 미미즈는 생명을 죽음으로 끌고 가는 재난 그 자체이다.
그러한 미미즈의 죽음과 같은 봉인은.
되려 생명을 만들고 살아가게 하는 '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감독 '신카이 마코토'가 그저 재난의 단면적인 부분만을 그린 것이 아닌,
자연적 상호작용을, 자연적 순환을 그린 것이다.
어린 스즈메에게 어머니의 죽음과 재난의 피해란,
감당하지 못할 고통이었을 것이다.
스즈메가 '그날'에 있던 일들을 기억 못하는 것은.
어린 스즈메는 감당하지 못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로
그날의 기억을 스스로 잊은 것이다.
자신의 일기장을 보며, 이 사실을 깨달은 스즈메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저세상의 어린 자신에게
어머니와의 추억, 그 자체인 의자로.
남들은 못하는,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
어린 스즈메와 현재의 자신을 위로한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저세상에 있던 사람의 정체가 자신을 위로해 줄 어머니가 아닌,
자신을 위로해 줄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가 나 대신, 나를 위로해주길 바람의 기다림이.
결국은 내가 나를 안아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영화는 '스즈메의 문단속'이라는 제목에서의
'문'만큼이나 중요한 소재가 숨어있다.
너와 나를 연결해 주는 문을,
너에게 닿을 수 있는 자전거를 쓸 수 있게 해주는
'열쇠'라는 소재이다.
스즈메에선 열쇠의 단순 무언가의 잠금을 해제하거나
잠그는 행위를 다루는 것만이 아닌
누군가의 기억들, 감정들을 재난의 아픔으로부터 조용히 덮어주는 의식이었다.
"그 장소에 깃든 감정을 읽어야 열쇠가 나온다."
소타는 스즈메에게 열쇠의 사용법을 이렇게 알려준다.
'열쇠는 타인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쥘 수 있는 것'이라고.
진정한 사용법에서 알 수 있듯
열쇠가 가진 의미는
슬픔을 알아보는 능력,
그 아픔에 다가갈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순간을 무너뜨리지 않고 안아주는 행위의 상징인 것이다.
영화는 수미상관을 이루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대는 그대에게 문을 열었는가'
어쩌면 이런 질문과 영화의 제목은
사뭇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른다.
'문단속'이라는 제목은 어쩌면,
이 영화가 꺼내놓은 마음의 크기에 비해 조금 작았던 단어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그대에게 질문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