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픈 이야기_드레스 코드 '블랙'

by 수아롬

외식하러 나서는 길

우연찮게 나와 남편의 외출복은 시크하게 ‘올블랙 커플룩’으로,

가 아니라 그냥 '꺼먼 옷 깔맞춤‘이 되었다.


오붓하게 가끔 하는 외식에, 기분처럼 밝고 샤랄라 하게 입으면 좋으련만,

다 깊은 뜻이 있다.


왜?

흘리니까...

어째서 자꾸만 흘리지?


언제부턴가 입으로 들어가야 할 음식은 들어오는 길에 가끔 경로 이탈을 하고,

입 안에 있어야 할 것들은 뭐가 답답한지 종종 탈출을 감행한다.


이 현상들이 처음엔 이상하고 이해가 안 됐지만,

과도기를 지나 이제는 자연의 법칙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검정 옷은 나름 각자가 알아서 취했던 '준비된 자세'였던 것이다.


밝은 옷에 알록달록 무늬가 생겨

식사 중에 퐁퐁을 얻어가며 화장실에서 한숨 나는 빨래를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앞치마도 소용없다.

야속하게도 딱 그 사이로 빠져나가,

얄밉게도 허벅지에서 데구르르 굴러,

힘없이 다리 사이로 다이빙한다.

얼기설기 천으로 엮인 신발에 착지만 안 해도, 그나마 다행이다.


식당 가는 길, 우리는 이 장면을 상상하며 깔깔깔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런데, 글로 옮기다 문득,

앞으로 얼마나 많은 준비가 더 필요하게 될까 떠올려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다.


지금도 하고 있는 것들.

제2의 눈, 돋보기 챙기기

화장실이 보이면 미리 한 번 다녀오기

길이 미끄러운 날엔, 존재감 확실한 울퉁불퉁 밑창을 가진 신발 고르기


더 나이가 들면

배부를 만큼의 약봉지와

제2의 발, 지팡이도 챙겨야 할 것이다.

누군가 묘사한 것처럼 닦지 않아도 썩지 않는 틀니도 챙기려나.


미련스럽게도 딱 그 시기를 지나야 실감하는 서글픈 준비물.

서글픔도, 준비처럼 익숙해지는 날이 올까.


'웃긴 이야기'라고 제목을 달고 글을 시작했는데,

슬며시 제목을 고쳐본다.

'웃픈 이야기'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


그렇게 함께 나이 들어가는 남편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문득 안쓰럽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웃으며 쓰고 있지만, 마음 한편엔 나이 듦이 남긴 서글픔을 슬며시 감싸고 싶은 마음도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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