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26 시작 14화

39살 익숙한 곳을 떠나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

by 쏜맹

첫째 아이 5학년, 둘째 아이 3학년이 되던 2월 우린 오랫동안 살았던 (약 9년)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다.


남들이 봤을 땐 아이들 공부를 위한 이사였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은 운동학원뿐이다.

환경을 변화시키고 싶었는데, 운 좋게 이사가 진행되었고 그중 그래도 공부 좀 한다는 동네 끄트머리쯤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아이들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집에서 하던 집공부에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변 친구들의 스케줄과 공부량 그리고 진도를 얘기해 주면서 본인들이 하는 것에 더 이상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았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오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동네 라테맛집을 찾아다닌 일이다. 아이들 등교시키며 가방하나 메고 여러 도서관을 돌아가며 다녔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이 3-4 곳 있다.) 가볍게 책을 하나 빌리고 도서관 근처 카페에 가서 책을 봤다. 또는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면서 작은 카페를 발견하면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곤 했다. 그렇게 발견한 라테 맛집은 나의 단골 카페가 되었다.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은 아이들도 나도 긴장 반 설렘 반이었기에 여행 온 거처럼 즐거웠다.

제일 큰 걱정이었던 아이들 친구문제는 의외로 잘 해결되었다.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새로운 곳에 잘 적응했고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었다. 첫째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그건 이사오기 전에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크게 염려되지 않았다.


이사하고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 전학도 아닌 나의 재취업이 되겠다.

4월 중순의 어느 날 도서관을 가고 카페를 가는 일도 집안을 정리하는 일도 조금 무료해졌을 그때, 오랜만에 알바천국에 들어가 봤고 아이들 케어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회사에 나가고 공부를 하고 수업을 하는 그 모든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무엇인가 할 수 있음이 주는 활력은 혼자 아동복을 팔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을 주었다.


모든 것이 좋았던 건 아니었다. 아이들을 조금 더 케어해 주길 바라는 남편과 그 돈 받으려고 나가냐는 주변인들의 비아냥을 견디는 건 조금 어려웠다. 수업을 하며 아이들에게 받은 에너지를 남편과 주변인들이 앗아갔었다. 그래도 새롭게 시작한 일은 꽤나 즐거웠고 어딘가 옷 차려입고 나갈 곳이 있다는 것이 수업을 가서 '이모'가 아닌 '선생님'으로 불려지는 것은 참으로 달콤했다.


그 달콤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34살의 나는 그저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했고 39의 나도 처음 시작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얼마가 되었든 내 손으로 오랜만에 돈을 벌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그 얼마가 겨우 이 정도밖에 되지 않음을 깨닫고는 벌기 이전보다 마음이 더 아파졌다고 하면 남들은 웃을까..


처음의 호기롭던 나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생기를 잃어갔다. 그 와중에 회사 사람과의 마찰도 생겼다. 만나면 항상 다른 사람의 흉을 보는 그 사람.. 처음에는 모른 척도 해보고 에둘러 그런 표현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나.. 달라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만나고 얘기를 나눠야 하는 사람이 항상 누군가의 욕을 하는 걸 듣고 있는 건 생각보다 큰 에너지가 드는 일이었다. 2-3시간의 시간이 참 힘들었다.


39살이어도 처음인 일이 있기 마련인데 나에겐 그 사람이 그랬다. 처음 만나보는 인간 유형이었다.


'나의 삶에 좋은 사람들이 가득하네'를 그 사람 만나고 깨달았다. 인간이 줄 수 있는 스트레스가 엄청날 수 있구나 하는 것도 깨달았고,.. 남편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 들었다. 고작 1년도 채 다니지 않았는데 이렇게 힘든데 오랫동안 한 회사를 다니는 남편이 존경스럽다고 얘기했다.


덕분에 가족애가 많이 생겼던 39살이었다. 인생은 참 계획한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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