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과의 이별
첫째 아이 5학년, 둘째 아이 3학년이 되던 2월 우린 오랫동안 살았던 (약 9년)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다.
남들이 봤을 땐 아이들 공부를 위한 이사였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은 운동학원뿐이다.
환경을 변화시키고 싶었는데, 운 좋게 이사가 진행되었고 그중 그래도 공부 좀 한다는 동네 끄트머리쯤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아이들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집에서 하던 집공부에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변 친구들의 스케줄과 공부량 그리고 진도를 얘기해 주면서 본인들이 하는 것에 더 이상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았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오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동네 라테맛집을 찾아다닌 일이다. 아이들 등교시키며 가방하나 메고 여러 도서관을 돌아가며 다녔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이 3-4 곳 있다.) 가볍게 책을 하나 빌리고 도서관 근처 카페에 가서 책을 봤다. 또는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면서 작은 카페를 발견하면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곤 했다. 그렇게 발견한 라테 맛집은 나의 단골 카페가 되었다.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은 아이들도 나도 긴장 반 설렘 반이었기에 여행 온 거처럼 즐거웠다.
제일 큰 걱정이었던 아이들 친구문제는 의외로 잘 해결되었다.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새로운 곳에 잘 적응했고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었다. 첫째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그건 이사오기 전에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크게 염려되지 않았다.
이사하고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 전학도 아닌 나의 재취업이 되겠다.
4월 중순의 어느 날 도서관을 가고 카페를 가는 일도 집안을 정리하는 일도 조금 무료해졌을 그때, 오랜만에 알바천국에 들어가 봤고 아이들 케어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회사에 나가고 공부를 하고 수업을 하는 그 모든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무엇인가 할 수 있음이 주는 활력은 혼자 아동복을 팔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을 주었다.
모든 것이 좋았던 건 아니었다. 아이들을 조금 더 케어해 주길 바라는 남편과 그 돈 받으려고 나가냐는 주변인들의 비아냥을 견디는 건 조금 어려웠다. 수업을 하며 아이들에게 받은 에너지를 남편과 주변인들이 앗아갔었다. 그래도 새롭게 시작한 일은 꽤나 즐거웠고 어딘가 옷 차려입고 나갈 곳이 있다는 것이 수업을 가서 '이모'가 아닌 '선생님'으로 불려지는 것은 참으로 달콤했다.
그 달콤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34살의 나는 그저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했고 39의 나도 처음 시작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얼마가 되었든 내 손으로 오랜만에 돈을 벌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그 얼마가 겨우 이 정도밖에 되지 않음을 깨닫고는 벌기 이전보다 마음이 더 아파졌다고 하면 남들은 웃을까..
처음의 호기롭던 나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생기를 잃어갔다. 그 와중에 회사 사람과의 마찰도 생겼다. 만나면 항상 다른 사람의 흉을 보는 그 사람.. 처음에는 모른 척도 해보고 에둘러 그런 표현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나.. 달라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만나고 얘기를 나눠야 하는 사람이 항상 누군가의 욕을 하는 걸 듣고 있는 건 생각보다 큰 에너지가 드는 일이었다. 2-3시간의 시간이 참 힘들었다.
39살이어도 처음인 일이 있기 마련인데 나에겐 그 사람이 그랬다. 처음 만나보는 인간 유형이었다.
'나의 삶에 좋은 사람들이 가득하네'를 그 사람 만나고 깨달았다. 인간이 줄 수 있는 스트레스가 엄청날 수 있구나 하는 것도 깨달았고,.. 남편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 들었다. 고작 1년도 채 다니지 않았는데 이렇게 힘든데 오랫동안 한 회사를 다니는 남편이 존경스럽다고 얘기했다.
덕분에 가족애가 많이 생겼던 39살이었다. 인생은 참 계획한대로 흘러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