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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맛

그 달콤한 공범들

by Ella


우리 아이는 채식주의자는 절대아니고요,

순 100% 육식주의자입니다.


야채는 싫어하지만, 돼지고기는 매일 먹었어요.

입 짧은 세입 공주는 매일 저녁 항정살 한 팩을 혼자 해치웁니다.

우리 집 에어프라이기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일 년에 한 번씩 새로 교체해줘야 했습니다.


우리는 종교도, 제한되는 문화도 없습니다.

못 먹는 음식도 없고, 알러지도 없어요.

식탁 위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가족입니다.


캐나다에서는 음식을 주문할 때 꼭 물어봅니다.

“알러지 있니?”
“채식주의자니?”
“할랄 푸드가 필요하니?”

우리 가족은 늘 "No" 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걸 당연하게 누려왔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제인이가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밴쿠버 블랙핑크와 함께하는 비밀의 시간입니다.

비밀공간은 냄새나는 화장실 한 칸.

(* 3화에서 나오는 밴쿠버 블랙핑크는 제인이와 같은반 친구들 입니다.)


제인이가 만든 밴쿠버 블랙핑크



그곳에서 제인이와 친구들은 속상한 일도 털어놓고,
가끔은 그냥 웃기기만 하다 끝나기도 합니다.

(* 하지만 그곳이 제인이가 영어를 가장 많이 배우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감정을 나누는 비밀 대화는 제인이의 영어 말하기 실력을 쑥쑥 키워줬어요.)


그리고 제인이는
그날 들은 모든 이야기를 저에게도 살짝 나눠줘요.
왜냐고요?
저도 제인이의 비밀 친구거든요.




요즘은 저도 비밀 이야기를 들으며

블랙핑크의 일급 비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밴쿠버 블랙핑크 친구들 중
제인이를 제외한 모두는 무슬림 문화권의 아이들입니다.
돼지고기 성분은 금기인 친구들이죠.

젤라틴이 들어간 젤리나 푸딩도 먹으면 안된다고 하네요.


하지만 학교에서는 오색찬란한 과자들이 그들을 유혹을 합니다.
제인이는 매일 한국산 알록달록 젤리를 먹고 있었죠.

아직 어린 아이들이
먹고 싶어도 스스로 참아야 하는 현실,

제가 보기엔 너무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그 흔한 맥도날드 해피밀도 못 먹는 현실,
먹고 싶은 마음보다 지켜야 할 규칙이 앞서는 현실.

그래서일까요,
참고 참고 참다가

제인이의 젤리를 보고 가끔 눈을 반짝입니다.

집에서는 먹을 수 없는 과자.
그렇다고 친구들 앞에서 먹고 싶다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


결국 그들은 비밀공간 한 칸에서
살짝, 조용히, 몰래 젤리를 나눠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놀랬습니다.

하지만 모르는척

비밀을 지키는 달콤한 공범이 되기로했습니다.


규칙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아이들은 그 규칙을 어겼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무언가 더 중요한 것을 지켜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함께 웃는 시간,
서로 나누는 순간,
‘같이 있음’이 주는 의미 말입니다.


아이들은 아직 어립니다.
금기가 지닌 무게를 온전히 알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소중함은 먼저 배운 듯합니다.





제인아,
가끔은 모르는 척하는 것도 세상을 사는 지혜란다.

누군가의 마음을 지키는 가장 조용한 방법이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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