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은 내려두고, 즐기는 연습이 필요해
뼛속까지 한국인인 저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자라며 살아남는 법을 먼저 배웠습니다.
‘잘하지 않으면 낙오된다’는 불안감이 늘 곁에 있었고,
멈추면 뒤처질 것 같은 두려움에 늘 무언가를 하며 달렸습니다.
그 불안이 때론 제 삶의 추진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런 제게 임신과 출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매달 초음파로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했고,
또래 아이들과 비교하며 머리 크기는 어떤지, 심장은 어떤지, 키는 얼마나 컸는지를 살폈습니다.
‘정상입니다’, ‘평균입니다’라는 말에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런데 출산 후, 안심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아주 평범하고 정상이던 아이가 이제는 ‘잘하는 아이’가 되길 바라는
저의 욕심이 저를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조리원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산모들과 매일같이 몸무게와 키를 비교했고,
조금이라도 더 컸기를 바라며 젖을 물렸습니다.
이유식을 먹는 시기, 옹알이를 시작하는 개월 수, 기저귀를 떼는 나이,
그리고 영어를 익히는 시점, 한글을 떼는 시기…
학교에 입학해서는 받아쓰기, 구구단, 그리고 독서량까지
비교와 조급함 속에서,
엄마의 가장 소중한 아이는 누구보다도 잘하는 아이가되기 위해 경쟁의 전쟁터에서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아이 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열렸습니다.
학교 시스템이 궁금했던 저는 학교 행사에 참여하러 갔습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킨더가든부터 7학년까지 약 600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습니다.
7학년은 졸업을 앞두고 있어 이번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6학년 학생들이 리더가 되어 체육대회를 이끌었습니다.
전교생과 교사들은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네 개의 팀으로 나뉘어,
학급 단위가 아닌 학년과 반을 섞어 팀을 구성합니다.
형제자매는 같은 팀에 배정되므로, 학부모는 자녀가 속한 팀만 따라다니면 되고,
정해진 색깔은 졸업 때까지 같은 색깔팀이 됩니다.
각 팀은 다시 17개의 소그룹으로 나뉘고,
각 그룹은 킨더부터 6학년까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과 6학년 리더가 함께 구성됩니다.
예를 들어 “7팀 경기”라고 하면, 초록 7팀, 빨강 7팀, 노랑 7팀, 파랑 7팀이 서로 맞붙습니다.
총 17개 그룹이 다양한 경기를 순환하며 참여하고, 각 경기는 약 10분 간 진행됩니다.
운동장은 넓은 흙바닥입니다.
한국학교처럼 시설이 좋은 학교도 여기서는 잘 볼 수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공간에서, 아이들은 마음껏 달리고 넘어지고 웃습니다.
한국은 운동장이 좁다 보니 학년별로 나누거나 일부 학생만 참가하거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단체 경기를 축소하기도 하지요.
한국에서는 청팀, 백팀 또는 반별 대항전을 하며 승부에 집중합니다.
상품이 걸리기도 하고, 상대 팀은 반드시 이겨야 할 ‘적’이 되기도 하죠.
아이들은 죽자 살자 경쟁에 임하게 됩니다. 상대 팀을 응원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이곳 체육대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바로 ‘응원 문화’였습니다.
자신의 팀의 경기는 빨리 완수했고 끝났음에도 아이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경기를 마치지 않은 팀의 친구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실수하거나 져도,
누구 하나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습니다.
규칙을 잘 몰라 엉뚱하게 행동해도,
그저 “괜찮아”라고 웃어줍니다.
반칙이라고 따지고 얼굴 붉히는 아이도 없습니다.
오히려 저학년 아이들의 속도에 맞춰 달려주고,
실수한 친구가 위축되지 않도록 다독여주는 모습이 더 많습니다.
모두가 즐겁게 즐기고 있으니 승패에 목숨 걸지 않습니다.
누가 졌다고 울지도, 누구를 탓하지도 않습니다.
져도 웃고, 이겨도 웃는 아이들.
진심으로 상대팀을 응원하고, 함께 기뻐할 줄 압니다.
릴레이 역시 대표 몇 명이 아니라, 같은 색깔 팀 전원이 뛰는 방식이었습니다.
팀 전원이 모두 달린 뒤 자리에 앉으면 경기가 끝납니다.
공정함보다는 모두가 참여하는 ‘경험 자체’에 더 큰 의미가 있었고,
모두가 달리고, 함께 웃으며 앉는 순간, 하나의 팀이 완성되었습니다.
줄다리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장갑도, 성별이나 인원수도 맞추지 않고 그냥 팀대로 합니다.
보기에 노란팀 인원수가 더 많았고, 시작하자마자 그린팀이 졌지만, 아무도 억울해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웃으며, 또 다른 경기를 기다립니다.
모든 경기가 끝난 뒤,
교장선생님이 점수를 합산해 등수를 발표하셨습니다.
물론 아쉬운 마음도 있었겠지만,
아이들은 잘한 팀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습니다.
늘 비교당하고 평가받으며,
악착같이 버텨온 제 삶이 서글퍼졌습니다.
경쟁이 없는 환경에서 한번도 살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저는 아직도,
교사 임용고시에서 떨어지는 악몽을 꿉니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텼으니까요.
이 글을 들은 제인이는 마지막에 꼭 이 말을 써달라고 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자주 해주시는 말이라며요.
꼭 이기지 않아도 돼. 재미있게 놀고 있다면, 그게 이긴 거나 마찬가지야.
승패보다는
처음 만난 언니 동생들과 같은 팀이 되어 진정한 협동과 배려를 배우며 즐거웠던 이 순간.
오늘 아이가 흘린 땀과 웃음은 그 어떤 보상보다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이날의 기억이 아이 마음속에 오래 남기를, 그리고 그 배움이 삶을 이끄는 힘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You don't have to w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