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인 시스템 속, 교사는 아이에게 집중.
캐나다의 새 학년은 9월에 시작됩니다.
9월 첫 주는 모든 학년이 전년도 담임선생님과 함께 보내며, 2주 차가 되어야 비로소 반편성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담임을 만납니다.
(-21화 내용 참고)
새로운 담임선생님은 학부모에게 이메일을 보내 학급 운영 방식과 학용품 목록을 안내하고,
학생 편으로 기초조사서(Home Information Sheet)를 제출하라고 합니다.
기초조사서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학생은 누구와 함께 거주하나요?
집에서 학교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주소)
집에서는 어떤 언어를 사용하나요?
학생이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학교를 마치면 방과 후에 무엇을 하나요?
교사에게 부탁하고 싶은 점이 있나요?
* 누가 학생을 데려다주고, 데리러오나요?
한국과 달리 캐나다에서는 어린이가 혼자 길을 다니는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특히 11세 미만의 아이는 혼자 길을 다니거나, 차 안·집 안에 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동 방임으로 신고 대상이 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모든 등하교는 부모가 직접 픽업·드롭해야 하고,
저학년의 경우 담임이 매일 보호자의 얼굴을 직접 확인합니다.
한국처럼 도시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고, 휴대폰을 가진 아이도 거의 없어 치안 시스템은 한국만큼 촘촘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린이들은 무조건 어른과 함께 동행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하교를 책임지는 학원차 시스템도 전혀 없습니다.
이곳 워킹맘들의 고충이 짐작되지요?
(정말, 이곳도 만만치 않습니다.)
새 학년이 시작된 지 3주 차에 접어들 무렵, 교장선생님께서 보낸 이메일이 도착했습니다.
"10월 2일은 학생 상담의 날(Student-Led Conference)입니다. 오후 1시 45분에 아이를 픽업해 주세요. 학부모 상담은 아래 링크를 통해 예약해 주세요.”
학부모는 구글 예약 링크를 통해 10분 단위로 원하는 시간대를 직접 선택합니다.
캐나다 학교는 한국처럼 ‘학부모 상담 주간’을 길게 운영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1~2주에 걸쳐 전화나 대면 상담을 통해 학부모가 원하는 방식과 시간에 진행되지만,
이곳은 단 하루,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상담 신청한 학부모를 10분 간격으로 만납니다.
1년에 단 하루, 단 10분이 공식 상담 시간, 부모가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국과 또 다른 점은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가정통신문을 학부모에게 이메일로 발송되는 시스템입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교사가 이 모든 일을 감당합니다.
물론 수업도 다하고, 담임 업무도 다하면서요. 상담주간 운영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하는 것도 모두 교사가 하지요.
예를 들어 (학교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습니다.)
상담을 진행하기 위해 상담주간 계획서를 작성하고, 안내문의 가정통신문 발송을 위한 계획서 작성합니다. 이 작성된 계획서는 교장선생님까지 내부 기안을 받습니다. 학교장 결재를 득하면, 이어 가정통신문을 프린트하고 학생들에게 배부를 합니다. 학교 홈페이지에 공지도 올리고, 학부모에게 문자로 안내도 합니다. 학생들에게 받은 학교상담 신청서를 수합, 그리고 상담 일정까지 모두 직접관리하고 다시 학부모에게 안내를 하지요.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이 모든 절차를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보내는 이메일 한통으로 끝나는 겁니다.
전교생에게 안내되는 내용은 교장선생님이나 행정실(Office)에서 주 1~2회 이메일로 발송됩니다.
그 덕분에 교사는 오롯이 ‘학생 지도’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학교의 학부모회는 이 날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운동장 한켠에 바비큐 코너가 열리고, 아이들을 위한 페이스페인팅과 놀이 공간도 마련됐습니다.
담임과 상담을 마친 뒤 학부모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은 얼굴에 예쁜 그림을 그렸지요.
이 모든 상황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학교는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가 함께 만들어 가는 곳‘ 잘 실천되는 곳이 바로 제인이의 학교였습니다.
담임선생님과의 첫 상담이 기다려졌습니다.
저는 10분 동안 선생님의 영어를 초초초 집중해서 들어야 하기에 긴장도 되었지요.
선생님은 지난 3주간 제인이를 지켜본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어만 사용하는 가정이라,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책은 한국어든 영어든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제인이가 즐겁게 읽는 거예요. 부모와 함께 매일 15분 이상이요.”
저는 제인이가 한국어만큼 영어책을 쉽게 읽지 못하는 점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렇게 조언하셨습니다.
“영어를 읽고 쓰는데 틀려도 괜찮아요. 영어는 어려운 언어예요. 완전히 익히려면 12살쯤 돼야 해요. 지금은 소리 나는 대로 읽고 쓰게 두세요.”
선생님께서는 나를 안심시켜 주셨지만, 저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년에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하자,
선생님은 놀란 듯 말씀하셨습니다.
“제인이가 인터내셔널 학생이었어요? 전혀 몰랐어요!”
(학생 개인 정보라 따로 학년이 올라가면서 새 담임교사에게는 전달이 되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그만큼 제인이가 자연스럽게 학교생활에 잘 녹아 있었던 거겠지요.
선생님은 ELL(English Language Learning) 선생님과 협업해 제인이의 읽기와 쓰기를 도와주겠다고 하셨습니다.
(*ELL 수업은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학생을 위해 주 1회 개별 혹은 그룹으로 진행됩니다.)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제인이와 같은 반이 된 게 정말 좋아요. 나는 럭키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인이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실감했습니다.
제인아.
너를 통해 듣던 학교 이야기를,
이번에는 선생님을 통해 들으니
내가 제인이 엄마인게 참 자랑스러웠어.
네가 학교에서 책을 틀리게 읽을 때도,
문장을 서툴게 쓸 때도 있겠지만
부끄러워하지 않고 천천히 성장해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언젠가 너는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겠지.
그때마다 엄마는 오늘의 너를 떠올리며,
믿고 지켜볼 거야.
제인이의 세상에, 엄마도 늘 함께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