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에서 떠올린 이야기
정신없이 바쁜 하루들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11월이 시작되고 곧 2026년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차가워진 바람을 통해 새삼 느낀다. 코끝이 시큰거리고 훌쩍이기 시작하니 단풍잎이 다 떨어지고 곧 겨울이 다가오려는 모양이다.
나는 가을을 제일 좋아한다.
짧은 계절이지만 붉게 물든 단풍잎과 노랗게 번져가는 은행나무의 잎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가끔은 한 나무에서 노란색부터 빨간색까지 각자의 색을 온전히 뽐내는 모습을 보며, 그 아름다움을 눈과 핸드폰 속 사진에 함께 담는다.
그래서일까, 가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예쁜 계절이기 때문에 늘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엔 회사 동료와 함께 경주를 다녀왔다.
요즘의 경주는 너무나 ‘힙’했다. 마치 “어서 와, 지금은 가을이고 여기는 힙한 곳이야.” 하고 속삭이는 듯했다.
대릉원이 훤히 보이는 카페 창가에 앉아 책을 읽으며, 사색에 잠기다 문득 위로받는 문장을 만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건 슬퍼서가 아니라, 그 순간이 너무 충만했기 때문일 것이다.
황리단길을 걷다 보면 골목 곳곳에 소품샵이 가득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O리단길’이라는 이름이 유행처럼 번진다.
경주에는 황리단길, 금리단길이 있고, 서울엔 경리단길, 망리단길, 송리단길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이색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거리라는 의미이겠지만 어쩐지 조금은 획일적인 느낌도 든다.
만약 ‘대릉원숲길’, ‘경주숲길’, ‘경주골짜기’ 같은 이름이었다면 어땠을까?
그 지역의 문화와 특징을 더 잘 드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 ‘O리단길’은 “여긴 뭔가 많겠다”라는 기대를 품게 하지만 그 길의 본래 색깔은 직접 걸어보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나는 이제 더 많은 ‘O리단길’보다, 각 길의 특성과 이야기가 담긴 이름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가방에 키링을 하나씩 다는 사람이 많다.
소품샵에도 대부분 인형이 키링으로 제작되어 있었고 나 역시 귀여운 키링을 여러개 구입했다.
이제는 가방뿐 아니라 바지에도 인형을 달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상상했다 언젠가 바지에 작은 책을 붙여서 바로 읽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물론 앉을 땐 불편하겠지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바로 꺼내 읽을 수 있다면 꽤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그런 발명이 실제로 나오게 된다면 이건 내 아이디어니까 꼭 소정의 인세는 나에게 주시길.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유행은 늘 돌고 돈다.
어떤 건 과거에서 돌아오고 어떤 건 새로이 태어나며 다시 세상 속으로 스며든다.
나는 유행을 좇는 사람은 아니지만 유행은 어쩌면 ‘시대가 함께 기억하는 추억’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지금은 웃음 짓게 만드는 추억이 된 것처럼.
언젠가 지금의 학생들도 어른이 되어 그 시절의 유행템을 이야기하며 웃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그들이 “아, 그때 참 행복했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지나간 시간의 낭만이자 삶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따뜻한 선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