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남긴 말~23화
무지개를 타고 건너온 메시지~아이리스
별일 없는 하루였는데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어수선한 날이 있다. 누구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말았고, 문자창에 몇 글자를 쓰다 지웠다. 정작 가까운 사람에게는 말이 더 잘 안 나온다. 아무리 마음을 전해보려 해도 쉽게 닿지 않을 때가 있다. 그저 멀리 있는 것처럼.
그렇게 닿지 못한 말들이 쌓여 어딘가에서 꽃으로 피어난다면, 아이리스가 그런 꽃일지도 모른다. 아이리스는 그리스 신화 속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의 이름을 가졌다.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가며 소식을 전하던 존재. 그래서인지 이 꽃은 처음부터 전령처럼 서 있다.
보랏빛 꽃잎은 선명하고 단정하다. 아이리스는 조용히 끊어진 길이 다시 이어지길 기다리는 듯하다. 닿지 못한 마음들 사이에 가만히 서 있는 꽃 같다. 오래전부터 화가들이 이 꽃을 좋아했던 것도 그런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흐는 마음이 불안했던 시기에 아이리스를 그렸고, 모네 역시 이 꽃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아이리스는 그저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마음을 붙잡아 주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삶도 비슷하다. 우리는 이어진 채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많은 조각들 속에서 하루를 건너간다. 좋았던 날도 있고, 꺼내기 싫은 기억도 있다. 서로 다른 마음들이 맞지 않아 아픈 날도 있다. 아이리스는 말없이 말한다. 삶은 한 가지 감정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슬픔이 기쁨 옆에 서고 오늘의 고단함이 내일의 깨달음으로 이어질 때, 우리 삶에도 무지개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고.
그래서 이 꽃은 묘비 곁에 자주 피어 있는지도 모른다. 떠난 사람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이 그 자리에 오래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미안해.” “고마워.” “거기서는 아프지 마.”
아이리스는 그런 말들을 조용히 받아 향기로 바꾸는 꽃 같다. 보라는 묘한 색이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다. 고요함과 감정이 함께 섞여 있는 색이다. 후회가 조금씩 가라앉고 떠나간 사람은 기억 속에 남는다. 아이리스가 전하는 메시지는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조용한 연결이다.
마음속에 아직 닿지 못한 말이 있다면, 혹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남아 있다면 아이리스 한 송이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세상에 완전히 끊어진 것은 없고 우리는 다만 아직 이어지지 못한 조각들 사이에 서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늘과 땅이 무지개로 이어지듯 나의 어제와 오늘도, 너와 나 사이도 언젠가는 다시 이어질 수 있기를. 보랏빛 다리 위에서 삶이 조금 더 조용히 완성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