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지나간 뒤, 마당 가장자리에 백합이 피어 있었다. 비에 젖어 무거워진 꽃잎은 흙 가까이까지 내려앉았지만, 향기는 오히려 더 짙어져 공기 속에 은근히 퍼져 나갔다.. 하얀 꽃잎은 빗물에 젖어 투명하게 빛났고, 그 중심의 노란 꽃가루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듯 고요했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어떤 꽃은 피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이 지닌 진심을 숨기지 않는다. 백합은 늘 그런 꽃이었다.
백합의 흰빛은 오래전부터 순결의 표식처럼 여겨졌다. 서양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상징으로, 동양에서는 결백과 진실의 징표로 쓰이곤 했다. 노랑, 분홍, 주황, 연보라—백합은 다양한 색으로 피어나지만, 유독 사람들은 흰 백합을 먼저 떠올린다. 흰 꽃이 지닌 상징 때문일까. 흰 백합이 성모 마리아의 눈물에서 피어났다는 오래된 전설도 있다. 눈물에서 피어난 꽃이라서일까, 백합의 순결은 언제나 약간의 쓸쓸함을 함께 품고 있다.
흰색은 쉽게 더러워지는 색이기도 하다. 손끝으로 살짝 스치기만 해도 노란 꽃가루가 묻어나 지워지지 않고 오래 남는다. 순수함을 상징하는 꽃이면서 동시에 흔적이 가장 잘 새겨지는 꽃. 백합의 이런 양면성이 늘 마음을 붙잡아 두기도 했다.
백합을 보고 있으면 ‘순수함’이란 한없이 깨끗한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쉽게 상처받고 더 깊이 흔들리는 마음의 모양이라는 생각에 닿는다. 흰 꽃잎이 빛을 잘 받아 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그만큼 어둠도 그대로 비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깨끗하고 맑을수록 더 많은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순결은 약함이 아니라, 고독 속에서도 자기 향을 잃지 않는 힘에 가깝다.
어릴 적 여름이면 우리 집 대문 옆 화단에도 백합이 피곤하였다. 엄마는 꽃잎이 떨어져 흙에 묻어 상하지 않도록 장마철이면 백합 아래 신문지를 조심스레 펼쳐두곤 했다. 잠시라도 더 곱게, 더 오래 백합을 지켜주려는 마음이었다. 나는 몰래 꽃잎을 만져보다 손가락에 묻은 꽃가루를 바라보며 신기해하곤 했다. 그때는 그 작은 가루가 ‘순결이 오래 남는 방식’이라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지키고 싶은 것은 언제나 쉽게 상처받기 마련이라는 것을, 엄마의 손길을 오래 지나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이해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흰 꽃잎 깊은 데 고요히 불 밝히는 마음 하나.”
짧은 글 속에 백합의 마음 같은 것이 숨어 있다. 고요히 타오르는 내면의 빛, 흔들리면서도 꺼지지 않는 향기. 삶을 오래 지내고 나서야만 알게 되는 밝음이다.
백합은 나에게 ‘흔들리는 순결’이라는 역설을 가르쳐준다. 비에 젖어 고개를 숙여도 다음 날 다시 빛을 품어 올리는 꽃. 흔적이 쉽게 남아도 향기만큼은 잃지 않는 꽃. 순수함이란 지켜야 하는 깨끗함이 아니라, 흘러오고 밀려드는 시간 속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향과 같은 것인지 모른다.
나도 그러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 흐려질 때가 있어도 다시 맑아질 수 있고, 상처받아도 향을 잃지 않는, 나만의 결을 지켜내는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