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난초 잎 위로 내려앉았다. 연둣빛 잎 끝에 맺힌 물방울이 반짝이며 떨어지고, 그 순간 은은한 향이 방 안에 번졌다. 한 걸음 다가서자 향기는 나를 품듯 안겨온다. 난초의 향은 진하지는 않지만, 마음을 고요히 감싸는 힘이 있다. 화려한 색도, 큰 꽃잎도 없이 조용히 자신만의 결을 지키는 향. 세상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고귀함이 그 안에 있다.
며칠 전 내 생일에 친구가 작은 난초 화분을 내밀었다.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잎은 단정했고, 윤기가 반지르하다.
“향이 참 은은하네”
내가 말하자 친구는 미소를 지었다. “향은 은은하지만 오래가,”
그녀가 말했을 때 오히려 그 말이 그녀 같다고 느꼈다.
사실 그녀는 한 때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살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삶은 뜻하지 않은 바람과 상처를 그녀에게 안겼다. 많은 이야기를 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에 스쳐 지나간 시간의 무게가 느껴졌다.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고, 상처를 통과한 자리에서 더 깊어지는 향. 그 순간 난초가 그녀와 겹쳐졌다. 난초는 조급하지 않다. 서둘러 피지 않고, 서둘러 향을 뿜지도 않는다.
묵묵히, 그러나 잊히지 않을 방식으로 존재한다.
옛 선인들이 ‘군자의 향’이라 부른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깊은 산중에서 수행하던 스님에게 한 여인이 난초 한 포기를 두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해 봄 그 자리엔 난초 향만 남았고, 해마다 꽃의 모양은 달랐지만 향만은 언제나 같았다고 한다.
보이지 않아도 남는 것, 사라져도 흔적으로 머무는 힘. 그것이 난초가 가르치는 존재의 방식이다.
며칠 뒤, 난초 사진을 친구에게 보내며 말했다. “아직 꽃이 안 피었어.” “괜찮아. 향부터 피우는 중일 거야.”
짧은 문장이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았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소리 없이도 스며드는 것들이 있다. 그건 우정이 내게 주는 방식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마음이 내 안에 자리 잡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병기 시인은 난초를 이렇게 노래했다.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난초〉 중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더 빛나는 존재, 조용하지만 단단한 생명을 지닌 꽃.
요즘 창가의 난초 잎은 조금 더 짙어졌다. 햇살 속에서 잎 끝마다 작은 생명이 숨 쉬는 듯하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나는 매일 향을 느낀다.
난초는 말없이 가르쳐준다. 조급히 피지 않아도 괜찮다고. 보이지 않아도 향으로 충분하다고. 그 깨달음 속에서 나는 꽃이 보여준 마음의 모양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