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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가르쳐준 마음의 모양~7

고통과 인내~국화

by 박영선


늦가을, 바람은 잎을 떨구며 계절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마당 가장자리, 햇살이 닿지 않는 그늘에도 국화는 여전히 피어 있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피어난 꽃잎들은 마치 스스로의 고통을 감싸 안은 듯 고요하고 단단했다. 어릴 적에는 왜 하필 국화가 늦가을에 피는지 몰랐다. 견디는 일이야말로 가장 고운 피움이라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국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꽃이다. 서양에서는 이별의 상징으로, 동양에서는 죽음을 넘어선 존중과 위로의 의미로 쓰인다. 흰 국화는 맑은 추모와 감사를, 노란 국화는 영혼의 평안을 뜻한다. 향기가 강하지 않은 이유도 있다. 이별의 자리에서 향은 슬픔을 덮기보다, 그 자체로 조용히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화는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지는 꽃으로 오래 기억된다.


국화는 늘 경계 위에 선다. 생과 사, 빛과 어둠, 피어남과 사라짐의 경계. 그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머물지 않고, 그 사이를 지켜내며 피어난다. 나는 그 모습에서 인간의 인내를 본다. 고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고통을 견디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다른 빛을 내는 존재가 된다. 국화의 흰색은 슬픔의 색이 아니라, 모든 색을 견딘 끝에 남은 침묵의 색이다.


어머니는 생전에 꽃을 무척 사랑하셨다. 아침마다 마당의 화분에 물을 주며 “너도 곧 꽃을 피우겠구나” 하시던 그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남아 있다. 그런 분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도 꽃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떠나면, 다른 건 다 간소하게 해도 꽃은 풍성하게 해 다오.”


그날 이후 나는 꽃을 단순한 장식이 아닌 마음의 언어로 생각하게 되었다. 장례헌화는 존경과 사랑을 보내는 제스처일지도 모른다.


장례식 날, 흰 국화와 노란 국화를 섞어 풍성히 장식했다. 향이 거의 없는 꽃들이지만, 그날만큼은 진한 향처럼 느껴졌다. 꽃잎 하나하나가 어머니의 숨결 같았다. 검은 상복 사이로 흰 국화가 피어있는 장면은 마치 죽음과 삶이 맞닿은 문턱 같았다. 그 문턱에서 나는 울지 않았다. 어머니가 남기신 생의 향이 조용히 내 마음속에 스며들고 있었으니까. 꽃 속에 파묻혀 환히 웃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시인의 구절처럼, 피움은 기다림의 끝에 오는 선물이다.

국화는 서두르지 않는다. 계절이 다 지나고, 세상의 소음이 잦아든 후에야 천천히 피어난다. 어쩌면 그것이 사랑이고, 인내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또 가을이 찾아오면, 나는 여전히 내 마음의 마당에 피어있는 국화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바람이 꽃잎을 스치고, 햇살이 살짝 머물다 갈 것이다. 국화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다해 살아내기 위해서 묵묵히 피어 있다.


그 앞에서 나는 다시 다짐한다. 고통이 내게 다가와도, 이 꽃처럼 고요히 견디리라. 그리고 언젠가, 내 마음에도 이런 모양의 꽃이 피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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