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카페는 평소처럼 문을 열었지만,
오늘따라 조금 허전했다.
익숙하게 들리던 발걸음 소리.
장난처럼 뺏어 가던 내 커피잔.
아무렇지 않게 “오늘도 밥 먹자”라고 말하던 목소리.
오늘은 없었다.
‘… 뭐야, 왜 안 오지.’
괜히 커피를 내리다 말고 문 쪽을 자꾸 바라봤다.
‘왜 신경 쓰이지.’
아니, 신경이 쓰이는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 엄청 보고 싶었다.
‘…이 사람이 내가 기억을 잃은 그 사람이라면,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 너를 좋아하고 있는지.
그리고… 네가 정말 내가 잊은 그 사람인지.
결국,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유하가 어제 내게 남긴 스케줄 사진. 촬영 장소.
‘가면… 볼 수 있겠지.’
**
촬영장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나는 이미 ‘유하 매니저’로 알려져 있어서
출입은 문제없었다.
멀리서 유하가 리허설을 준비하는 모습을 봤다.
카메라 앞에서도 빛이 나는 사람.
내가 어제 왜 그렇게 그녀를 자꾸 보게 됐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사장님?”
유하가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왜 왔어요? 보고 싶었어요?”
“… 그냥, 근처에 볼일 있어서.”
“거짓말.”
“… 진짜야.”
“거짓말. 근데 좋아. 보고 싶었죠?”
“응 보고 싶었어 “
내가 그렇게 대답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놀라웠다.
유하는 리안의 대답을 듣고 펑펑 울었다
“그 말이 얼마나 그리웠는데
훌쩍 나쁜 놈 훌쩍 미워 “
리안은 당황해하며
“혼잣말로 왜 이렇게 오버하는 거야
근데 우니까 귀엽다 이쁘다 “
유하는 눈물을 그치고
“이제 반말해요.”
“갑자기 왜.”
“이제 사장님이 아니라, 리안“
“응 좋아 유하야 “
“진짜? 안 어색해요?”
“어색한데 익숙해 “
유하는 환하게 웃으며 내 팔을 가볍게 잡았다.
“오늘, 하루 종일 같이 있어요.”
“… 너 바쁘잖아.”
“괜찮아, 나 너한테 시간 줄 수 있어.”
“그래도 되나.”
“응. 그리고, 너 나랑 같이 있으면 재밌잖아.”
“…응.”
“너 지금 나 계속 보잖아. 나 그렇게 좋아?”
“음 조금?
“좀 말고 많이.”
“… 많이.”
유하가 키득거리며 내 팔에 가볍게 기대었다.
“너 이렇게 솔직한 사람 아니었는데.”
“… 너 앞에서는 좀 달라지는 것 같아.”
“나한테 반했네.”
“… 그런가 봐.”
“와, 리안이 반했대. 정말 좋아.”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어쩌면 이미 내 마음은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걸 느꼈다.
**
촬영이 끝난 뒤, 유하가 나를 영화관으로 데려갔다.
“어제는 너랑 심야 영화 봤으니까 오늘은 낮에 보자.”
“… 연속 영화 데이트냐.”
“좋잖아, 나랑 영화 보는 거.”
유하는 내 손을 잡고, 당연하다는 듯이 매표소로 이끌었다.
이 손이 왜 이렇게 익숙할까.
**
영화가 끝난 뒤, 유하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너, 솔직히 말해봐. 나랑 하루 안 보면 보고 싶지?”
“…응.”
“진짜?”
“…어.”
“그럼 내일도 만나자.”
“… 좋아.”
“우리 매일매일 보자. 너한테는 짧은 인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네가 처음부터 내 전부였으니까.”
“… 너, 그런 말 자꾸 하면…”
“왜?”
“진짜… 좋아질 것 같잖아.”
“이미 좋아졌잖아.”
유하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 내 손을 살짝 더 꼭 잡았다.
**
그날 밤, 루아가 내 앞에 나타났다.
“너, 진짜 금방 빠진다니까.”
“…이 사람, 이상해.”
“왜?”
“익숙하고, 너무 당연하고… 손을 잡으면 놓고 싶지가 않아.”
“그게 사랑이야.”
“근데, 아직도 모르겠어. 이 사람이 내가 잊은 그 사람인지.”
“사랑이 먼저인지, 기억이 먼저인지.
그거,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
루아는 가볍게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너는 이미 선택했잖아.
사랑하고 싶다고.”
‘사랑하고 싶다’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
‘내가 너를 기억하지 못해도,
너를 좋아하고 싶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너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