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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

by 구름 위 기록자

내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의 깊은 곳에는 또 다른 이유가 스며 있다.


어릴 적 친할아버지·할머니 댁에 가면 지금도 선명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거실 한쪽, 묵직한 나무 테이블 위에 놓인 메모장과 펜들.

달력이 지난 뒷면을 잘라 만든 메모지 위에,

까만 모나미 펜으로 무언가를 늘 써 내려가던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어린 나에게 그 기록은 그저 빽빽한 한문으로 채워진 낯선 글씨일 뿐이었다.

호기심에 페이지를 넘기다 잉크가 덜 마른 글자가 손에 묻곤 했고,

그 흔적이 성가시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는 아쉬움이 마음 속에 잉크 처럼 번진다.

단 한 번도 그 기록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할아버지를 오랫동안 펜 앞에 앉게 했는지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는 종종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마치 함께 앉아 대화하는 기분이다. 할아버지도 그날의 기분과 작은 감정을 기록하셨을까?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하루였을지 몰라도,

당신에게는 기록하고 싶은 특별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할머니 역시 방 안에 원고지를 늘 쌓아두고 계셨다.

한 글자씩 느리지만 따뜻하게 써 내려가던 모습은 지금도 내 기억 속 아늑한 풍경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많은 원고지가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할머니는 누구보다 행복해하셨다.


아마도 그런 글쓰기의 기쁨이 두 분을 통해 내 안에 자연스레 스며든 것이 아닐까?

래서 나 역시 일상의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다. 아주 특별하지 않아도,

보통의 하루라도.

그저 그런 감정들이라도 모이면 결국 내 삶이 되고, 내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가슴 속에 흐르는 두 분의 열정을 존중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그래서 결국 나는 이 모든 것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기록이 한 장 한 장 쌓여 책이 되었듯, 내 하루의 기록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내 글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세상에 처음 내보냈다.
그 무대는 다름 아닌 브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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