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로가 되는 클래식 감상
저는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웠어요.
나름 체르니 40번을 넘어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바흐까지 다양한 음악가들을 연주를 통해 만났었죠.
그렇지만 악보에 그려진 음표를 보고
손이 따라가는 연주를 했을 뿐
클래식의 아름다움과 깊은 울림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지금 반추해 보니,
어린이의 삶은 하얀 도화지처럼 순수하고
어른처럼 복잡하지가 않죠.
다채로운 클래식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경험과 감정의 폭이 넓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짧다면 짧은 클래식과의 만남 이후로
아주 자연스럽게 저는 클래식과 멀어져 갔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
40대에 인생 처음으로 혼자 제대로 된 여행을 했어요.
낯선 곳을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서
생각했어요.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삶의 피곤함으로 어둡게 가려져 있는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음악’과 ‘글쓰기’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만의 삶의 나침반에 따라 걷다 보니
어린 시절 배우고 싶었던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고,
첼로의 배움은 클래식 감상으로,
클래식 감상은 글쓰기로 이어졌습니다.
40대에 듣는 클래식은
그 선율이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다가옵니다.
삶과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어짐에 따라
아름답고 풍요로운 멜로디가
더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얼마 전 첼로의 거장 미샤마이스키의
리사이틀에 갔었어요.
처음에는 프로그램북을 여러 번 정독하며,
곡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결국 음악은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임을 그의 연주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그냥 듣고 있는 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라고요.
클래식이 나를 위로해 주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클래식 안에는
기쁨과 슬픔, 분노와 환희, 행복과 불행 등
다양한 감정이 선율에 올라가 춤을 춥니다.
선율 속의 감정이 나의 감정과 만날 때
우리는 공감받고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클래식을 감상할 때 느끼는 감정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비전문가의 시선으로
곡을 이해하고, 생각과 감정을 글로 담아,
저와 같은 어른의 지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클래식을 통해 삶의 위로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