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꿈
그동안 짧게 스쳐 가듯 얼굴이나 기척만 느끼는 꿈은 몇 번 있었지만, 이렇게 통째로 그가 등장한 건 처음이었다. 꿈속에서 우리는 서로 너무 사랑했고, 영화 같은 장면들이 이어졌다. 클리셰처럼 목숨을 바쳐야만 하는 순간들이 몇 번이고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내가 몸을 던졌다. 주저 없이.
아침에 눈을 뜨자, 웃음이 났다. 참, 이런 꿈을 꿨다는 게 우습지 않나 싶어서. 이미 끝난 관계인데, 이미 없는 사람인데, 나는 여전히 꿈속에서조차 그를 지키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끝내 그를 지켜주지 못했던 내가, 무의식 속에서는 몇 번이고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어린애처럼 사랑만 갈구했고, 그의 편이 되어주지 못했으니까. 그래서인지 꿈속의 나는 더 필사적으로 그를 붙잡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힘이 없다’고 말하던 건 결국 나에게 향한 말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우리 둘 다였을지도 모른다. 그가 말했던 소진은 아마 이 관계에서만 빠져버린 힘이었을 것이다. 그 힘은 상대만 없으면 다시 충전되었겠지만, 나는 일방적으로 끊긴 쪽이었다. 놓아버린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내 안의 힘이 사라졌음을 모르고 남겨졌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누구에게도 무엇이든 줄 게 남아 있지 않다.
결국 꿈속에서 내가 몇 번이고 그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건, 내 마음이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지키려 했던 건 그가 아니라, 아직 끝맺지 못한 내 감정, 미완으로 남아 있는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웃겼다. 꿈에서조차 나는 여전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그런데 그 우스움 속에서 조금은 안도했다. 아직 완전히 죽은 건 아니구나. 이렇게 생생했던 꿈 안에서 그를 끝까지 잡은 건, 나의 무의식이었을까, 아니면 진짜 나의 의식이었을까. 나는 뭐에 그렇게까지 필사적이었을까. 어떤 걸 잡고 싶었기에 꿈속에서도 그에게 희생했던 걸까. 대체로 나는 꿈을 자각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그를 놓지 않으려 했던 내 의식은 무엇을 바랐던 걸까. 뭐가 그렇게 절박했길래.
이렇게 미완된 감정은 언제든, 어느 형태로든 나타나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않나. 감정은 모든 사람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 그게 쌍방 간의 감정이었으면 더더욱. 하지만 더 이상 나를 다치게 하지 않고, 추억할 정도로만 남아 있다면, 충분히 괜찮게 발현될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이별 후 해준 말 중 가장 와닿았던 건, “끝나고 나서 난 3년 동안 죽어 있었어. 껍데기만 남았던 것 같아.” 다른 말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는데, 그 말만 뼈저리게 남아 있다.
그냥 세상이 쉬운 게 미워지던 찰나, 이렇게 쉬운 세상에서 나만 유난 떠는 애가 되는 게, 하얗고 말끔한 얼굴에 가끔 올라오는 딱 하나의 여드름처럼, 더 잘 보여서 보기 싫은. 딱 그런 존재 같았던 나에게, 더 튀어나온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구나, 하는 게 가장 큰 위로였듯이, 인생은 미완된 것들을 품고 살아야 하는 숙명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 과정이 껍데기만 남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