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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별후애2 19화

은중과 상연

그 아이와 J.

by 유은


나의 생애. 삶이란, 나에게 열어보기 힘든 상자였다. 돌아보면 몇 개의 이름만이 남는다. 윤현숙, 천상학, 그리고 류은중. —은중과 상연 중.


나는 작품 속 뻔한 클리셰에 쉽게 울지 않는다. 재난 영화에서 부모과 관련된 장면이나, 사랑하지만 결국 이별하는 연인들에게는 눈물이 나지만,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세심한 장면 앞에서는 의외로 담담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작품을 보면서는 그 모든 방어가 무너졌다.


‘폭싹 속았수다’ 이후 처음 끝까지 본 한국 시리즈였다. 결국 마지막에는 꾹꾹 눌러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다음 날 일정이 있어 붓는 게 싫었지만, 끝내 오열했다. 왜였을까. 아마도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독하게 좋아했지만 결국 비슷하게 끝난 친구. 완전히 같진 않지만, 나는 은중보다는 상연에 가까운 사람이다. 은중이 내뱉던 “누가 끝내 널 받아주겠니.”라는 말이 가슴을 찔렀다. 나는 그런 말을, 정말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직접 들어본 적이 있다. 그래서 그 대사는 지금도 쉽지 않다. 상연이 느꼈을 저주처럼. 나는 그 아이에게 상연처럼 이기적으로 굴었고, 결국 남자 문제로 멀어진 것도 비슷하다. 그래서 오랜만에 그 아이가 생각났다.


우리는 20대 중반까지 연애를 하지 않았고, 나는 서울에 오래 살면서도 관계를 쉽게 맺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그 아이는 늘 기다리게 되는 존재였다. 그녀는 친구가 많고 노는 걸 좋아했지만, 나를 그녀만의 이유로 특별하게 대했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우리는 싸우고 화해하길 반복했다. 스무 살, 한국에 돌아와 다시 그녀를 만났고, 그 후로 스물다섯까지 우리는 오래된 연인처럼 싸우고 화해하며 함께였다. 몇 달씩 연락이 끊겨도 먼저 손을 내밀어준 건 늘 그녀였다. 고맙게도, 나의 꼬인 부분들을 받아줬다. 우리는 몇 시간이고 통화했고, 만나서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지루했던 적이 없었다. 나는 늘 기다렸고, 그녀는 늘 먼저 다가왔다. 그 아이를 내 글에 이렇게 길게 쓰는 건 처음이다. J를 제외하고 이렇게 많은 문장을 할애한 적이 없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내 인생에 ‘이름’으로 남지는 못했다.


처음엔 오래된 연인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느낌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J가 왔다. J에게 그녀 이야기를 처음 했을 때까지만 해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방적인 끝을 당하는 게 어떤 건지 몰랐고, 그래서 힘들었다. 그때는 그 관계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바닥을 보고 난 뒤에야 알았다. 진짜 관계와 착각 속의 관계는 전혀 다르다는 걸. 그 아이와의 관계는 결국 진심을 나눈 사이는 아니었다. 은중과 상연의 관계와 달랐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이름만 남는다는데, 그녀는 그저 젊고 무모했던 시절, 함께 웃던 친구로만 남을 것 같다. 그게 조금은 아쉽다. 아직 내게 남는 이름은 한 명뿐이라는 게.


J.
6개월이 되어간다. 놀랍게도 괜찮아졌다.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한 근육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게 덜 두려워서일까. 그의 이름은 내 안에 평생 남겠지만,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 날 단칼에 놓아준 그에게 고맙다. 함께 했다면 평생 불행했을 나, 그리고 그에게 너무 못했던 내가 이제는 후회되지 않는다. 너의 선택은 잔인했지만 어른스러웠다. 그 덕분에 나는 단단해졌다. 다른 여자와 만나고 있다 해도 이제 아무렇지 않다. 그 생각이 나를 흔들지 않는다. 내가 다른 사람과 만나, 그 남자의 아이를 낳는 미래를 상상해도 슬프지 않다. 오히려 기대된다. 이제 <이별 후애> 로서의 글은 이게 마지막일 것 같다. 정말 괜찮다.


그래도 하나, 아직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세상이 끝난다고, 내일이 없다고 한다면. 부모님 말고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다면, 나는 내 옆에 누가 있든 아직은 네가 보고 싶을 것 같다. 하지만 다행인 건 나는 죽을 때까지 내일이 없다는 사실을 모를 거라는 것. 그래서 널 보러 가지도, 보고 싶어 하지도 않을 거라는 것.


정말 다행이지. 이제 나는, 끝내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시간들을 지나겠지. 기대된다. 하지만 이젠 무턱대고 기다리진 않을 거다. 나도 무언가를 감당하고, 감수해야겠지. 너에게 그걸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이제는 괜찮다. 그저 끝난 관계를 복기하는 건 나를 계속 죽이는 일 같으니까.


너무나 이기적이었던 순간들이 잦았던 상연처럼— 하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나를 죽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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