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계획)이란 돌아갈 수 있는 힘

by 혜성


저는 완전 무계획적인 삶을 좋아했습니다.

유명한 MBTI 기준으로 말하자면,

극단적인 P 유형의 인간이었죠.

그저 감각과 직관에 따라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일처럼 여겨졌습니다.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살아가는 것에서

해방감을 느꼈어요.


하지만 일과 책임이 많아지면서 달라졌습니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그 에너지를 써야

할 일들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계획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처럼 느껴졌죠.




그런데 루틴이라는 것에 대해 저는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책임"이라는 단어에 예민한 사람입니다.

스스로 내뱉은 말은 꼭 지켜야 한다는 강박,

그 책임감이 저를 지탱해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저를 짓누르기도 했죠.


그래서 하루 계획, 루틴이라는 것도 결국엔

나와의 약속이라 여기고, 지키지 못하면

하루 전체가 망가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저에게 루틴은 오히려 스트레스로

작용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루틴을 자주 실패로 인식합니다.

멋진 계획을 세우고 첫날 실패하면

금세 포기하고 자책하죠.

하지만 루틴이란 건 단 한 번의 성공이 아니라,

실패해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힘입니다.


루틴은 꼭 지켜야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흐트러지더라도 내일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집입니다.

계획을 못 지켰더라도 그 루틴이 있었기에

노력할 수 있었던 거잖아요.


실패가 아닌 '경유지'로서의 루틴.

그 관점으로 바라보니 마음이 참 편해졌습니다.




인생의 행복은 지쳤을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말처럼,

저에게 루틴이란 되돌아갈 하루입니다.


내일도 돌아갈 하루가 있다는 것.

이상적인 하루를 내가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은 조금 더 단단해집니다.

대단한 계획이 필요하진 않아요.

그냥 밥 잘 챙겨 먹기, 물 많이 마시기.

그 정도면 충분해요.


여러분도 자신에게 선물을 주세요.

내일 돌아갈 하루라는 이름의 선물.


비록 오늘은 느슨하게 보냈더라도,

내일 나를 다시 만나러 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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