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닫은 건 나였습니다

6편 – 다시 흐르기 시작한 시간, 아들의 발걸음

by 윤서

바뀌는 흐름 속, 멈춘 시간


흐름이 바뀐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함께 바뀌는 건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계절을 갈아입고, 사람들은 제각각의 속도로 내일을 향해 나아가지만,

제 아들의 시간은 유독 어느 한 지점에 멈춰 있었습니다.


흘러가는 세월과는 상관없이,

그 아이의 마음은 빛바랜 사진처럼 과거에 머물러 있었지요.

부모인 저는 그 멈춰버린 시간 앞에서 무력하게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애써 괜찮은 척, 아무 일 없던 듯 하루하루를 조용히 지나 보내려 했습니다.



입대, 불안한 출발선 앞에서


아들의 군 입대가 다가오면서, 제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주변의 부모들은 자랑스럽게 아이의 군 생활을 이야기했지만,

저는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불안은 끝도 없이 밀려왔습니다.


입대 전날 밤, 저는 아이에게 거듭 물었습니다.

“정말 괜찮겠어?”

“잘할 수 있겠어?”

아이의 대답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저는 꾹꾹 눌러왔던 불안을 속으로 삼킨 채,

그저 현실 앞에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입대를 조금이라도 미루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모든 걸 받아들이는 아이의 모습 앞에서

가을에 낙엽을 떨구는 나무처럼

제 희망도 한 잎, 두 잎 스러져 내렸습니다.


하지만 메마른 가지도 다시 새순을 틔우듯,

낙엽이 진 자리에 연둣빛의 희망이 돋아나듯,

저는 이 시간 역시 순리대로 흘러가길 바랐습니다.

그저 아이가 무사히 다녀올 수 있기를,

이 시간이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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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당일, 훈련소 앞에서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아들을 그곳에 남긴 채 돌아섰습니다.

차가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마음은 하루 종일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벌판에,

온몸의 잎을 떨군 채 서 있는 나무처럼

아이를 보낸 엄마의 마음은 쓸쓸하고 시렸습니다.



돌아온 아이, 조용한 무너짐


며칠 뒤, 예기치 못한 시간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군에서는 전화를 걸 수 없는 오후 네 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채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엄마… 집 앞인데… 택시비 좀…”


그 말 한마디에 세상이 멈춘 듯했습니다.

몸이 먼저 반응해 현관문을 열자,

깡마른 몸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이 저릿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말없이 택시비를 건네고,

조용히 아이를 부축해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다그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돌았지만,

그 모든 말들을 꾹 삼켰습니다.


“많이 힘들었어?”

그 한마디가 저의 모든 마음이었습니다.


따뜻한 밥 한 끼.

그것이 제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고,

그날만큼은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군수첩에 남겨진 마음의 기록


그날 밤, 아이는 조심스레 군수첩 하나를 건넸습니다.

접힌 수첩 안엔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고백들이 조심스레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쓸모없다.”

“그냥 사라지고 싶다.”


몇 페이지를 넘기자,

같은 문장이 반복되어 있었고,

번진 글씨와 지워진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 수첩을 넘기며 저는 조용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그 무거운 마음을 혼자 짊어지고 있었을 그 아이를

그동안 저는,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를 꼭 안으며 말했습니다.


“잘 왔어. 그리고 잘했어.”


그 말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그날의 아이는 말없이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짐을 싸는 아이, 멈춰 선 나의 손


다음 날, 아이는 조용히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엄마, 다시 학교 다닐래요.”


휴학 중이던 대학에 복학하겠다는 말.

너무 갑작스러워 저는 멈칫했습니다.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무심코 소리치고 말았습니다.


“안 돼. 지금은 아직… 무리야.”


그러면서도 아이가 싸고 있던 가방을

차마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아이의 손을 붙잡고,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조금만 더 쉬었다 가.”


그 순간, 아이는 울먹이며 애원했습니다.


“아빠가 알면… 나는 죽어…

엄마, 제발. 아빠 오기 전에 가게 해줘.”


그 한마디 앞에서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동안 제가 아이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제 불안이 아이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저는 아이의 손을 놓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래, 네 하고 싶은 대로 해.

시간은… 아빠에게 맡기자.”



다시 흐르기 시작한 시간


어린 마음에 가만히 숨겨두었던 상처들,

말없이 쌓여만 가는 거리감


하지만 겨울을 보내고 봄을 지나 여름이 오면

다시 잎이 돋고 푸르름으로 무성해진 듯,

이제는 아이를 시간의 순리에 맡깁니다.


차가운 바람만 불던 그 가슴에

다시 희망의 싹이 움트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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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만큼은 시간도 아이의 손을 놓지 않고 끝까지 붙잡아 주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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