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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테이블에 인형을!

욕망 웨딩인형 : 시작은 가볍게, 결국 퇴사!

by 최지현


"네가 *캐드를 해?" 친구가 다시 물어봤다.


인문계열 전공자가 공학직종에서 쓸 법한 캐드라니 신기하기도 할 것이다. 회사 업무상 캐드는 필수였다. 한 번도 안 해봤지만 하라면 해야지, 그렇게 캐드를 배웠다. 회사에서는 1인분을 해내기 위해 노력했다. 일은 할만했다. 그러나 어느 조직에나 빌런은 있었다. 그는 일을 주지 않았다. 일을 던졌다. 나는 계속 실수했고, 계속 혼이 났다. 일하면서 한 번도 남 앞에서 운 적이 없었는데 터져버렸다. 너무 부끄러운 기억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빌런을 당황스럽게 만들었으니 잘했다 싶기도 하다. 너무 일이 많아서 힘들어서 운 게 아니다. 또 실수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었다. 스스로를 원망하게 하는 일, 과연 해야 될까? 고민이 되었다.


결혼도 해야 하고 여러 현실적인 생각에 나는 용기가 없었다. 일주일을 버티다 보면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는데 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내 커리어는? 인센티브는? 울면서도 욕심이 났다. 사무실에 앉아 땅 밑으로 꺼져버려서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다들 이렇게 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의 나날을 보내면서도 퇴근하고는 꼭 뜨개를 했다. 회사일은 틀리고, 혼나고의 반복인데 뜨개는 혼나지 않았다. 혼날 이유가 없었다. 틀리면 다시 풀어서 옳게 고치면 되니까. 수정하면 더 이쁘게 뜰 자신도 있었다. 그래서 뜨개가 좋았다. 어쩌면 회사일도 틀리면 다시 고치면 될 뿐 자책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잘못 뜬 거 같아요."

공방에 엉망진창이 된 인형을 들고 울상이 된 채로 갔다. 나한테 선생님은 다시 뜨면 되죠! 하시면서 쓱쓱 풀어 다시 몇 코 떠주셨다. 사실 몇 코 더 떠주신다고 해도 당장 완성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시 뜰 힘이 난다.

작은 호의가 격려가 되고 다시 시작할 힘을 나게 했다.


공방에 가면 여러 귀여운 샘플들이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뜨였던 것은 웨딩커플 인형이었다. 귀여운 멜빵바지에 턱시도를 입은 신랑인형, 하얀 면사포와 티아라가 눈에 띄는 신부인형. 결혼을 생각하는 시기였던 터라 더 눈길이 갔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랑, 신부인형은 자격증 과정의 인형이었다. 취미반으로만 다녔던 나는 자격증은 부담스러워서 선뜻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다 인형수업의 고급과정을 듣기 시작하니 수업만 가면 눈에 자꾸 밟히는 저 인형이 탐나기 시작했다. 저 디테일들은 언제 배울 것이며 자격증 따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며 고민했다. 몇 주를 고민하다가 자격증 수업을 신청했다. (이번에는 공방 수강 등록보다는 고민기간이 짧다!)


회사에 사직서는 이미 한번 낸 적이 있었다. 나한테 다시 주는 기회가 아니라 회사에게 주는 기회였다. 나의 첫 번째 사직서는 그렇게 없어졌다. 다시 버텨봐라 응원해 주시는 분 덕분에 몇 개월을 버텼다. 몇 개월 후, 나는 사무실에서 뛰쳐나가 흡연장 벤치에 앉아있었다. 회사 건물 구조상 흡연장 벤치가 가장 풍경이 좋았다. 나의 한계였다. 낼까 말까 고민하던 사직서는 없어졌다. 여기 있다가는 모든 사람을 미워하게 될 것 같아 무서웠다. 이미 상처받아 작아질 때로 작아진 내 마음이 인간적으로는 좋아했던 그들을 미워하게 될 것 같았다.


퇴사하고 나니 인형자격증 진도가 쑥쑥 나갔다. 그 사이 결혼식 날짜는 잡혔고 웨딩인형 도안을 보는데 마음이 두근거렸다. 웨딩인형을 드디어 뜨기 시작했다. 혼자 뜰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도안에도 쓰여있지 않은 선생님만의 팁들이 필요했다. 혼자 하면 더 오래 걸리고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을 만들었을 것이다. 결혼식 포토테이블에도 올릴 생각에 더 꼼꼼하게 만들었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완성하고 나니" 이걸 내가 만들었다고?" 스스로도 놀랄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욕망 가득한 웨딩인형이 탄생했다. 우리 포토테이블에는 남들과는 다른, 더 특별한 욕망의 웨딩인형이 놓이게 되었다. 너무 이뻐서 결혼식에 누가 훔쳐가면 어떻게 하지?라는 쓸데없는 상상도 했지만 지금 우리 집에 예쁘게 놓여있다.


욕망의 웨딩인형에는 퇴사의 헤어짐과 결혼의 만남이 다 담겨있었다.


너무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됨을 배운 날들이었다.


또한 내가 하고 싶은 건 마음껏 욕심을 내어도 정도가 지나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캐드 : 컴퓨터 소프트웨어. 스케치/드로잉 및 설계하여 2D 도면 또는 3D 객체 파일을 생성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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