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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또 졌다!

모녀충돌 루돌프 : 엄마한테 직접 만든 인형을 드렸다.

by 최지현

나의 손재주는 아빠를 닮았다. 어릴 때 아빠는 내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으면 방에 슬그머니 들어오셨다. 딸이 뭐하는지 궁금한 마음 반, 아빠도 만들고 싶은 마음 반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아빠는 나보다 더 손재주가 좋으신 편이다. 그래서 도와주시면 모든지 더 정교하게 만들어졌지만 어린 나에게 아빠는 경쟁자일 뿐이었다. 그에 비해 엄마는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 자체에 관심이 없으시다. 그래서 내가 무언가 만들고 있으면 엄마는 항상 '이번에는 또 뭐야?'라는 반응정도만 보이셨다.


나의 손재주는 성인이 되어서 뜨개로 발현되었다. 공방을 다니기 전에도 유튜브를 보며 뜬 뜨개소품들을 지인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지인들을 챙기면서 엄마한테는 선물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가방을 만들어 드렸다. 어쩌면 나는 엄마가 '우리 딸이 이거 떠줬어.'라는 자랑과 함께 즐겁게 가지고 다니시는 걸 상상을 했던 것 같다. 엄마가 평소 들고 다니는 소지품들을 생각하며 크기, 재질을 고려하여 만들었다. 그런데 꽤 지난 후에 집에 가보니 그 가방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딱히 가방의 행방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이가 왔는데 너무 이쁘다고 자기 주면 안 되냐고 해서 엄마가 줬어."

저녁을 먹으면서 엄마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만드는 것의 수고로움을 모르신다는 게 씁쓸해졌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방을 만든다고 뿌듯해했던 내 마음을 무시당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한가득 서운함을 표현하며 이제는 안 만들어 드릴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엄마는 별다른 대꾸가 없으셨다. 그렇게 말하는 딸을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속상해서 계속 곱씹어본다 해도 엄마의 마음을 내가 어찌 알 수 있을까.

내 결심을 무너뜨린 루돌프 인형

몇 개월이 지난 후 엄마가 우리 집에 놀러 오신 적이 있다. 집에는 뜨개인형이 가득했다. 그 많은 인형들 중에 엄마가 마음에 들었던 인형은 크리스마스 루돌프를 닮은 곰인형이었다. 엄마는 너무 예쁘다고 그 인형을 만지작 거리셨다.


"이뻐?"

엄마는 루돌프인형에 계속 눈을 못 떼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서 다음에 본가에 갈 때 그 인형을 들고 갔다. 그렇다. 또 엄마 눈빛에 지고만 것이다. 엄마한테 무언가 해주지 않겠다 결심해 놓고서는 다시 뜨개 선물을 드렸다. 나만의 결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인형을 주는 마음은 달랐다. 비슷한 디자인으로 만든 또 다른 크리스마스 인형이 있어서 드려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인형을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뜨개 선물이라고 결심하며 드렸다. 엄마는 루돌프인형을 집에서 제일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두셨다. 나는 그렇게 잘 놓인 인형을 보며 이제 저 인형은 내 것이 아니라고 다짐했다.


부모님과 나는 자차로 3시간쯤 가야 하는 거리에 살고 있다. 거리도 꽤 멀고 스케줄 맞추기가 어려워 자주 가지 않는다. 자주 가지 않음으로써 나는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심리적 거리도 잘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나와 엄마는 참 많이 다른 사람이다. 엄마와 너무 가까워지면 마음을 다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나는 이미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뜨개선물을 함으로써 이 거리를 조금 좁혀보려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남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모녀의 관계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다행히 우리 집에 남겨진 크리스마스인형

하지만 관계의 거리는 온전히 내가 정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우리의 모녀관계의 거리에 대해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랜 경험을 통해 나는 엄마와의 관계를 가볍게 유지하려 노력한다. 관계의 가벼워짐이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뜨개 선물을 하지 않음으로써 엄마와 나는 충돌하지 않고 잘 지내게 되었다. 또한 뜨개선물 대상자에 엄마를 제외한 것은 현재 유지 중이다. 남들이 보기에 조금 먼 관계를 유지하며 우리는 잘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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