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르기

타닥타닥

by 박하우주

상담은 담담하게 이어졌다.

잘 못한 것도 아닌데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다.

주어진 질문에 전공자답게 설명했다. 마치 옆에 있는 나를 보듯.

교수님은 모니터 가득 자세히 기록했다.

그러고는 자기 분석이 뛰어나, 길게 상담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몸에 밴 나의 관찰은, 미리 다 해둔 숙제처럼 번거로운 일도 아니었다.

그걸로 길지 않은 상담도 그만두게 되었다.



사실, 나는 더 이상 나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그저 들끓는 그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약을 먹었다.

그 후 얼마간 평온한 듯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미세한 감정 변화의 불씨는, 언제고 다시 춤추게 할 감정의 발화점일지 몰라,

나는 정비병이 보초 서듯 숨죽여 나를 감시했다.

그리고, 또다시 덜컥.

생각의 폭주가 발동했고, 소비도 일정 없이 폭주했다.

여전히 내가 예상할 수 없는 감정 회오리가 또다시 나도 모르게 옆에서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잽싸게 나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반복되는 그 불씨가 응축되지 않도록 차츰 나의 감정을 뭉글뭉글하게 하는 법을 알아가게 되었다.



꽤 오랫동안 억눌린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건지 모른다.

그래서 영혼이 나를 빠져나가야만 했을지도. 도서관에 그날 밤처럼.

아무도 없는 곳이 안전하다는 생각에, 내 육신을 옮겨 놓고 싶었던 건 아닐지.

그때부터 내 안의 내가 자주 등장했다.

어쩔 땐 리와인드처럼 스쳐가는 장면 속, 타인과 나의 표정과 자세 그리고 공기의 냄새, 손의 긴장감 같은 미세한 감각까지 다시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면, 어쩐지 개운해져 나의 감정도 점점 무뎌지게 되었다.

그리고 후회로 이어질 미래도 지워주었다.

시간이 지난 후, 기억이 미화된다는 말도, 이런 식의 생존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삶에 그다지 애착이 없었던 젊은 날이었지만,

이제는 나와 나의 적당한 거리를 둘 줄 안다.

과거 나의 치부는, 내 삶의 에피소드같이 여겨져 남들이 울지언정 나는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강한 집착으로부터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은,

외로움과 처절함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한 걸음 물러나 인생의 긴장감을 곁에 놓아본다.

그 무덤덤 속에서 오히려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일지도.

그리고 그건 바로 나의 자신감이란 것을.

당당함에 툭툭 털어내 버린 감정들에 마음이 가볍다.



이번 주 토요일 마지막 화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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