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운 걸 진짜 못 먹는다.
불닭볶음면 한 봉지만 먹어도 500ml 생수를 원샷할 정도다.
이것도 용 된 거지.
20대엔 너구리도 매워서 물에 씻어 먹었다.
사람들은 매운 걸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이는 ‘상(上)맵찔’이다.
어릴 땐 더했다.
우리 집은 늘 삼촌들이 같이 살았고, 라면 한 박스는 기본 상비품이었다.
항상 신라면이었다. 아주 가끔 안성탕면. 근데 그마저도 매웠다.
엄마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아주 특별한 방식의 라면이 있었다.
스프를 넣지 않고 끓인 라면. 우리는 그걸 ‘안 맵꽁’이라 불렀다. 반대로, 어른들이 먹는, 라면 봉지에 나온 레시피 그대로 끓인 라면은 ‘맵꽁’이었다.
엄마는 맵찔이 자식들을 위해
물에 가루스프 대신 건더기스프만 넣고,
간장과 소고기 다시다로만 간을 했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진짜 맛있었다.
짭조름하고, 깊은 맛이 있고, 맵지도 않은 라면.
우리가 부엌에 들어가
“엄마~ 라면 끓여줘!” 하면
엄마는 늘 똑같이 묻곤 했다.
“맵꽁? 안 맵꽁?”
그러면 우리는 팔을 번쩍 들고 외쳤다.
“안 맵꽁! 안 맵꽁!!”
그걸 남들이 보면
“그게 무슨 맛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나에겐 최고의 요리였다.
아니, 엄마가 만든 건 다 맛있었으니까.
한 번은 엄마가 없을 때
민지 언니랑 지훈이 오빠랑 셋이 집에 남겨졌다.
언니가 라면을 끓여주겠다고 해서 신나서 말했다.
“언니야, 안 맵꽁으로 끓여줘! 맵꽁으로 끓이면 내 못 먹는대이~“
근데 민지 언니는 ‘맵꽁’도 ‘안맵꽁’ 도 몰랐고, 레시피도 모르고, 내 입맛도 몰랐다.
그냥 일반 라면처럼 스프 다 넣고 끓였다.
나는 삐져서 라면을 안 먹었다.
그게 너무 매웠고, 무엇보다 엄마의 맛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끔 내가 매운 라면 끓여 먹는 걸 보면
엄마가 말한다.
“아이고~ 니 옛날에는 안 맵꽁 라면 끓여달라 하던 애가,
이 매운 걸 다 먹고 있네~”
엄마 눈엔 나는 아직도 그 일곱 살 꼬맹이인가 보다.
다음에 대구 내려가면,
엄마한테 다시 말해봐야겠다.
“엄마, 안 맵꽁 한 번만 끓여줘.”
지금 먹는다면 무슨 맛일까?
그 맛도, 그 시간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