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Ep.02 마른틈 : 관계의 온도를 기록하다

by 해이





글에는 온도가 있다.
너무 뜨거우면 금세 식어버리고, 너무 차가우면 닿을 수 없다.

마른틈 작가의 글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관계의 미묘한 체온이 머무는 자리,
그 온도를 기록하는 사람을 오늘 만난다.






A. 시작의 이유


1. 글을 처음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다섯 살 때부터 매일 일기를 썼어요. (물론 지금은 안 써요ㅎ) 다만 그건 제가 쓰고 싶어서 썼던 행위는 아니라, 제 인생에 글을 ‘처음 쓴다’라는 기준은 두 번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은 뭣도 모르고 엄마 손을 잡고 작문대회에 참가했던 여섯 살 무렵인데, 그때 저의 노래방 18번 곡이 심수봉씨의 ‘소양강 처녀’였거든요. 째깐한 여섯 살짜리 여자애가 구슬프게 그 노래를 부르면 동네 어른들이 참 재미있어하셨는데, 아빠가 정말 싫어하셨어요. “그딴 노래 부르지 말라”며 곧잘 화내셨죠. 아마 어린 딸이 삶의 풍파가 담긴 노래 구절을 읊는 게 싫으셨던 듯해요. 해서 저의 첫 작문대회의 제목은 ‘소양강 처녀’였어요. 원고지에 삐뚤빼뚤한 커다란 글씨를 구겨 넣었죠. 아마 상은 못 받았을 거예요. 그게 제 인생 최초의 ‘작문’이었답니다.

고단하고 지난한 시간을 지나 제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살아가고 있었어요. 두 번째 계기는 제 [말하는 대신, 쓰는 밤] ‘내가 다시 펜을 잡은 이유’*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방통대 과제서부터 시작해요. 오랜만에 조금 흥미로운 주제의 글을 쓰기 시작하며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답니다. 문득 인정욕구가 동한 저는 난데없이 브런치에 승인심사를 넣었고 단 한 번, 반나절 만에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말하는 대신, 쓰는 밤



2.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감정이나 태도는 무엇인가요?


백번을 물어도 ‘솔직함’이라고 말할 것 같아요. 솔직함은 제 글의 가장 큰 강점이자 약점이에요. 저는 글을 쓰기 위해 한없이 솔직해지는 사람이지만, 딱 그만큼 한없이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에요. 조금 부끄럽지만 어떤 속상한 이야기를 쓸 때는 한 단어를 쓰고 눈물을 찍어내고, 한 문장을 서술하고는 마우스와 키보드에서 손을 떼버리고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릴 때도 있어요. 그리고 그 글을 내보내려 퇴고하는 과정에서도 수차례 눈시울이 붉어지죠.

그것들은 아직 상처들이 아물지 못했다는 증거겠지요. 해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마음을 이렇게 내보내도 되는지는 초반부터 지금까지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그 솔직한 마음이 저와 저의 글이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다고 믿어요.

저는 아직 완벽히 치유되지 못했으나, 치유되기 위해 나아가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마음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어요.


3. 당신의 글은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나요?


예전에 ‘배우’라는 직업을 참 매력적이라고 여겼던 것 같아요. 그들의 화려한 순간보다는, 대사와 지문을 통해 다양한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점이 근사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비록 배우가 될 수는 없었지만! 저는 다른 방식으로 다양한 삶을 살아볼 수 있게 되었지 뭐예요!

제 글은 저를 숲 내음이 가득한 메타세콰이어길로 이끌기도, 비가 진창 쏟아붓는 남해의 바닷가로도 데려다주기도 한답니다. 그곳에서 저는 어느 날은 애잔한 마음을 노래하고, 또 어느 날은 튜브에 올라타 얼음을 동동 띄운 음료수를 홀짝이죠.

저의 글은 저를 어디로든 데려가지만, 저는 종종 이 길에 당신도 함께하길 바랍니다. 가끔은 제 문장과 함께 그 길을 산책하고, 유명한 맛집에 감탄하며, 그 삶을 유영하길 바랍니다.


4. 글이 잘 써지는 시간대나 장소가 있나요?


어떤 글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주로 조도가 낮고 어두운, 조용한 환경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시간대는 새벽 두세 시쯤이요. 고쳐야 할 아주 고약한 버릇인데 쉽지는 않습니다... 시무룩..


5. 당신의 글이 가장 자주 출발하는 감정은 어느 쪽인가요?


보통은 ‘무’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가끔 생각하는데 저는 쓸데없이 설명충이예요. 이 질문을 받고 제 피드에 있는 글들 첫 문장만 슥 훑어봤는데 대부분 ‘무감정’으로 뭔가를 설명하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해서 끝에는 꽤 애절하거나 처절하게 끝나는 제 글을 보면 저도 기가 차요. 하하하.

하여간에 첫 도입부는 꽤 무색무취인 듯해요. 성공하려면 강력한 훅으로 시선을 잡아끌라고 했는데… 그런 쪽으로는 재능이 없는 것 같네요. 역시 저는 돈을 벌기엔 글러 먹었나 봐요.




다섯 살의 일기, 여섯 살의 ‘소양강 처녀’, 그리고 방통대 과제에서 다시 깨어난 문장들.
그녀는 그렇게, 두 번째 인생의 첫날을 맞았다.

“저는 아직 완벽히 치유되지 못했지만,
치유되기 위해 나아가는 사람이에요.”


▶ 요약 한 문장:
글은 상처를 봉합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다시 살아보기 위한 호흡이었다.
▶ 느낌 한 줄:
삐뚤빼뚤한 어린 시절의 글씨가, 결국 지금의 작가를 깨웠다.




B. 작가의 세계관과 개성


6. 당신의 글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인가요?


음…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짙은 남색, 네. 짙은 남색으로 하겠습니다.

제 글은 대체로 깊은 내면의 불안과 회피, 고독 같은 어둡고 쓸쓸한 감정을 다룰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다만 짙은 남색은 검정색이 아니죠. 만약 그 색을 하늘에 빗댄다면, 깊은 밤이 이제 막 지나가고 여명이 비추기 직전의 새벽하늘이지 않을까요? 긴긴밤을 지나 고단했던 마음에 스미는 약간의 희망이 저민 색상이요.


7. 글을 쓸 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나 이미지가 있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에요. 저는 이 표현을 사랑해요. 어떻게 쓰냐에 따라 층층이 쌓아 올린 불행의 단초가 되기도, 겹겹이 품어내는 희망의 씨앗이 되기도 하죠. 그 표현은 글을 풍부하게 해준답니다. 그래서 양쪽의 의미로 자주 사용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래도 저는 희망의 단초가 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참 좋아해요.


8. 독자들이 당신의 글을 읽고 어떤 감정을 느끼길 바라나요?

‘다정’이요.

저는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을 서툰 인간으로 살아왔어요. 뱉어내는 말에는 늘 가시가 돋아있어선, 그 가시에 찔려 밀려나는 이들을 되레 원망했어요. 정작 제가 뿌린 가시가 그들의 마음에 박히는 줄도 모르고요. 이런 제가 사회화되기까지 저의 가시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감싸 안아준 다정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저는 여전히 조금은 서툴지만, 그들 덕분에 다정을 배웠답니다. 그래서 바라기를, 당신들이 저의 글을 읽으며 온정과 다정을 느끼길 소망합니다.


9. 글을 쓰면서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있다면 각각 무엇인가요?


요즘 들어 느끼는 건, 글 쓰는 일이 혼란스러운 감정을 조절하는 데 참 도움이 된다는 거예요. 기쁨은 단어마다 그 환희를 오색빛깔로 담아내어 감정을 찬란하게 음미할 수 있게 해줘요. 반대로 슬픔이나 분노는 층층이 쌓인 바위더미를 단어 하나, 문장 하나마다 옮겨 덜어내게 해주죠. 가슴에 꽉 들어찬 무거운 돌덩이를 그렇게 조금씩 옮기다 보면, 마지막 온점을 찍는 순간 한결 가벼워진 마음의 무게가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준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결국 저는 글을 쓰며 성숙하게 감정을 다스리는 힘을 얻은 게 되겠네요.

다만, 가끔은 이 부끄러운 감정들을 내보내는 게 참 민망할 때가 있어요. 가급적 신경 안 쓰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래도 이렇게까지 솔직해질 줄 모르고 시작했던 터라, 이 계정은 제 실제 지인들도 꽤 보거든요. 현실의 저는 좀 시크하고 싶고… 속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데… 이 공간은 제 마음을 너무 쉽게 내어주는 공간이라… 가끔 계정 폭파하고 싶어요……. 힝입니다…‘-`

하지만 그 또한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겠죠! 그저 처음 결심한 대로, 이곳에서만큼은 오롯이 저로서, 제 감정에 충실하며 솔직하기로 마음먹었답니다.


10. 이건 다른 작가들과 차별된다고 생각한다, 하는 나만의 장점이 있나요?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낼 때, 그들은 저에게 어떤 글을 쓰겠냐고 물었어요. 저는 “삶이 늘 즐거울 수만은 없어 모진 풍파를 겪겠지만, 그 모든 상처를 '관계'를 통해 회복하는 글을 쓰고 싶다"라고 답했고요. 그때부터 제 모든 글의 아이덴티티는 ‘관계’에 초점을 두고 서술되었습니다.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 종종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서운한 마음, 그리하여 부족한 나를 되돌아보는 마음, 그러나 결국 애정하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마저. 그래서 제 글은 어느 날은 부끄럽게 볼을 붉히는 연심 같고, 또 어느 날은 사근사근 내려앉는 편지처럼 마음에 닿을 거라 감히 자부합니다.




짙은 남색의 새벽 하늘처럼, 그녀의 문장은 어둡지만 끝내 희미한 빛을 품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쓰고, 살아내고, 다정을 배운다.

“독자들이 제 글을 읽으며 다정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 요약 한 문장:
그녀의 글은 절망을 품은 희망이고, 외로움을 품은 다정이다.
▶ 느낌 한 줄:
짙은 남색의 문장 속, 아주 미세하게 빛나는 새벽의 온기.




C. 작가로서의 목표와 애정


11. 글을 통해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몇 번의 글을 통해 이미 밝힌 적 있지만, 저는 전업 작가에는 큰 관심이 없어요. 물론 정성을 다해 쓴 글이 누군가에게 닿는 순간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겠지만, 제게 중요한 건 언제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서 그 마음을 기록하는 일이에요. 글을 쓰고, 책을 내서 작가가 되는 일은 그 과정일 뿐,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에요.

저는 관계를 쓰는 사람이에요. 그리하여 이런 ‘관계’의 감정들을 기록하는 것. 그로써 모든 부족한 관계들이 조금은 더 나은 모습으로 채워지고, 그 글을 읽는 당신들이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12.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본인 글은 무엇인가요?


[혼자 먹는 라면은 맛이 없다]* 시리즈 북입니다!

아마도 제가 백 권의 책을 내도 저의 인생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혼자 먹는 라면은 맛이 없다.


13. 이 글만큼은 꼭 읽어줬으면 좋겠다 싶은 작품은요?


실은 제일 읽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싶은 글과 읽어줬으면 좋겠다 싶은 글이 같은 작품인데요. [혼자 먹는 라면은 맛이 없다] 시리즈 중 ‘축하한단 말은, 사실 거짓말이었다’*입니다.

제 글은 늘 솔직한 감정을 담고 있지만, 아마… 가장 들키고 싶지 않았던 부끄럽고, 치졸하고, 초라하고, 한심하고, 옹졸한, 저열한 감정의 완전체를 담고 있는 글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장 들키고 싶지 않다가도, 가장 솔직히 제 마음을 마주했던 글이기에 가장 애착이 갑니다.

*축하한단 말은, 사실 거짓말이었다


14. 내 글 중 가장 애정하는 문장은 무엇인가요?


오, 세상에 너무 많은데… 하나만 뽑아야겠죠…?

저는 ‘마치, 단 한 번의 결핍도 없었던 것처럼.’이라는 문장을 고르겠습니다!


15. 그 문장을 쓸 때의 상황이나 마음을 기억하고 있나요?


남들에게는 별것 아닐 일도 저에게는 결핍이 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고작 넘어진 상처에 밴드를 붙이는 행위. 개운하게 씻고 나와 넷플릭스를 켜고,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힐링하는 그런 행위들이요.

결핍이란 그렇게 예기치 못한 상황에 문득 찾아와 저를 무력하게 주저앉히고 울리죠. 그래서 더 이상 주저앉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약간은 비장한 마음을 담아 쓴 문장이었어요.

실은 언젠가 이 문장을 제목으로 한 [단 한 번의 결핍도 없었던 것처럼] 이라는 책을 내고 싶어요.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저는 부족한 부분이 참 많아서, 그 결핍들을 하나씩 이겨낸 후 당당히 전시하겠다고 다짐했거든요. 그러려면 아마 충분히 상처가 아물 시간도, 멋지게 성장할 여정도 필요할 테니까요!




그녀는 관계 속에서 흔들리고, 깨지고, 다시 꿰매며 마음을 기록한다.
전업작가보다 ‘관계의 기록자’로 남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는
삶을 향한 단단한 애정이 배어 있었다.

“결국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지는 글이라면, 그걸로 충분하죠.”


▶ 요약 한 문장:
그녀에게 글쓰기는 사랑의 복기이며, 관계의 온도를 기억하는 일기이다.
▶ 느낌 한 줄:
모든 관계에는 서로 다른 체온이 있고, 그녀는 그 온도를 재는 사람이다.




D. 작가의 일상과 글의 온도


16. 글을 쓸 때 당신만의 루틴이 있나요?


우선 쓰고 싶은 말을 막 씁니다. 순서나 맥락 따위는 개의치 않고 그냥 마구 써요. 특히 무조건 ‘한글’ 프로그램에 써야 하는 습관이 있어요. 워드나, 인터넷 한글 독스도 써봤는데 묘하게 불편하더라고요. 불편하면 문장이 나오다 말고 뚝뚝 끊기지 않겠어요? 마치… 포토샵 버전 7.0과 2025의 차이랄까…. 하여튼 그렇게 초안을 쓰고 열심히 짜깁기합니다. 이렇게 보니 저는 ‘작가’보단 ‘편집자’에 조금 더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1차 퇴고까지 마쳤다면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글을 저장해 둡니다. PC와 모바일은 가독성의 차이가 꽤 커서 모바일 환경에서도 퇴고해야 해요. 이 과정에서 중복된 단어와 접속사들을 대체하고, 문단을 정리하여 최종 발행합니다.

허나 저의 퇴고는 발행 후에도 계속됩니다. 투비컨티뉴……

글을 수없이 반복해서 읽는 제 모습을 본 그가 “지가 쓰고 지가 맨날 읽네… 콘텐츠 무한 생성 오진다…”라고 말하곤 하죠. 하하


17. 글 외의 일상에서 영감을 주는 건 어떤 순간인가요?


생각보다 많은 순간마다 영감은 떠올라요.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도, 코끝을 인색하게 스치는 바람에도 이야기가 있죠. 고개를 들어 본 하늘이 어쩐지 비가 내릴 듯한데 외로이 날아가는 무리에서 이탈한 철새에게도, 매일 출근길, 전철역 앞 은박 호일에 감싼 김밥을 이천 원에 건네는 주름진 손에도 이야기가 있어요.

중요한 건 그걸 애정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인 것 같아요. 그냥 지나친다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겠고 기억에도 남지 않겠지만, 그때의 감정과 마음을 기록하면 그것이 제겐 영감이 됩니다.

결국 일상을 사랑하는 마음 자체가 제 글의 원천이 되겠네요.


18. 당신의 글상(글의 기운)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애정’

환희와 열락의 순간에도, 질투와 불안에 한없이 초라해지는 순간에도, 깊은 슬픔에 침잠하여 가라앉는 순간에도, 결국 그 모든 순간을 애정하는 마음을 담아내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합니다.




새벽 두 시의 조도, 초콜릿 한 조각, 따뜻한 홍차.

그녀의 일상은 그렇게 익어간다.
감정은 매일 쌓였다 흩어지고, 다시 단어로 환생한다.

“모든 감정은 결국 애정이에요.”


▶ 요약 한 문장:
그녀의 하루는 감정의 온도를 기록하는 실험실이다.
▶ 느낌 한 줄:
따뜻함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그 새벽의 공기처럼 그녀는 자신을 식히며 문장을 데웠다.




E. 다음 작가에게


19. 나를 인터뷰이로 꼽아준 작가님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에게 처음 피드백 요청을 하셨던 날이 생각이 나요. 당시 저는 ‘감히 남의 글엔 평가든 피드백이든 아무 말도 얹지 않는다!’라는 곤조가 있어서, 약간은 무안하실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으로 거절했던 것 같아요. 그 이후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서, 작가님의 글을 죽 읽어보게 됐습니다.

저랑 같이 엮는 게 실례일지도 모르겠으나… 저는 글을 보자마자 해이 작가님도 저와 비슷한 감정의 파고를 겪어낸 시간이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작가님께는 죄송하지만, 더더욱 피드백 안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글들을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모르지 않기 때문이에요.

대체로 그런 글들은… 존재 자체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꽉꽉 잠가놓았던 수도꼭지를 콸콸 틀어 그저 흘러나가게끔 용기 내는 것. 그 용기를 내는 일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요.

이 좋은 이야기에 저를 담아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고백과도 같은 글에 가슴이 떨려서, 저에 대해 서술해주신 내용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아가야 할 길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달까요. 제 문장 안에 체온이 있었다는 건, 제가 당신에게 다정을 건넸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괜찮겠지요?

우리는 함께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앞으로도 꽤 오래 소통하고 지내겠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이가 해이님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부족한 부분들이 많지만, 최대한 도울 테니 의지가 되길 바라요. 우리의 모든 시즌이 끝나면 편하게 맥주 한잔도 기울이길 바라고요. 나 해이님 사는 곳 알고 있다. 후후… 우리 집에서 30분도 안 걸린다….


20. 나만 알고 싶었던, 애정하는 작가를 추천해주세요.


‘이 순간’* 작가님입니다.

*이 순간 작가님 브런치 링크


21. 다음 인터뷰어를 이분으로 추천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순간 작가님은 늘 온정하고, 다정하십니다. 작가님의 따뜻한 시선 속에 담기면, 그 하루가 조금은 자신 있는 삶으로 채워집니다. 사소한 것마저 놓치지 않는 세심한 관찰력으로 상대방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늘 확인시켜주십니다. 저는 작가님의 그런 다정을 사랑합니다.

그 생에 가졌을 조금은 서글픈 마음들이 왜 없겠어요. 그녀는 그 마음을 온전히 마주하고 그때의 자신에게 온정한 마음과 위로를 건네십니다. 저는 제 마음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까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녀처럼 ‘그때의 나’를 다정히 안아주고, 사랑해주는 일은 늘 어렵거든요. 그래서 그 다정이 묻은 그녀의 글을 읽을 때면 늘 가슴 언저리가 간지럽다가, 어쩐지 울 것만 같은 기분에 댓글 창을 열었다 닫았다 서너 번을 반복하게 되죠. 물론 저는 여전히 겁쟁이라 그러고는 결국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도망가지만요!

제가 브런치 활동을 하게 되어 작가님께 닿을 수 있었음에 언제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22. 이번에 당신이 다음 인터뷰이로 추천한 작가님께 한마디 한다면요?


음…이 순간 작가님. 요즘 바쁘신데…제가 숙제를 이렇게 또… 의도치 않게…드리게 돼서…죄송해요…‘-`…늘 애정합니다!


23. 지금 당신에게 글쓰기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살아오면서 서툰 감정들을 인정하지 못해 몸부림쳤지만, 글쓰기를 통해 부끄러운 마음마저 마주하고,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그만큼 환희의 순간은 더욱 찬란하게 품어낼 수 있었지요.

저에게 글쓰기는 그렇게 모든 감정을 직면하고 이해하게 해줍니다. 결핍과 상처를 지나 관계를 사랑하게 하는 용기입니다. 그리고 그 용기를 다정으로 건네는 일이 제 글의 의미입니다. 그리하여 제가 건네는 다정이 당신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순간’ 작가에게 바통을 넘기며,
그녀는 다정한 인사를 남긴다.

“글쓰기는 결핍과 상처를 지나
관계를 사랑하게 하는 용기입니다.”


▶ 요약 한 문장:
결국 글은, 관계를 사랑하기 위한 다정의 언어였다.
▶ 느낌 한 줄:
그녀의 문장은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에 체온을 남긴다.




마른틈 작가는 필명을 “상처와 회복의 공간”으로 정의한다.*
말라비틀어진 땅의 균열 속에서도 빛이나 새싹이 피어나듯, 자신 또한 그 틈을 통해 다시 살아나고자 한 것이다.

*"마른틈"이라는 필명의 의미


그녀의 이름에는 단순한 별명이 아닌 서사가 있었다.
균열과 결핍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틈을 생명으로 바꾸는 용기가 아름다웠다.
나는 그녀가 세운 그 하얀 울타리 안에서, 진심이란 것이 얼마나 다정하게 피어날 수 있는지를 보았다.
결국 ‘마른틈’은 숨기기 위한 가면이 아니라, 진실하게 살아남기 위한 따뜻한 이름이었다.


그녀의 인터뷰를 읽는 내내, 마음 한켠이 뜨겁게 데워졌다가 다시 식는 걸 반복했다.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말했던 “온도를 기록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내 안의 마른틈에도 어느새 작은 희망이 움트고 있었다.

오늘, 그녀가 건네준 그 새싹 같은 희망에 조심스레 손을 내밀며,

이제 ‘이 순간’ 작가님께 바통을 건넨다.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