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방의 책임
서울명문고시원 2층, 201호.
낡아 삐걱거리는 문을 열면, 어설프지만 나름대로 정리된 방 안이 보였다.
방바닥에는 보풀이 소복이 일어난 담요 한 장, 벽 쪽엔 책상 하나와 접이식 의자 두 개. 겨우 다리 하나 뻗을 자리만 남아 있었다. 누렇게 변해버린 형광등이었지만 맹렬한 기세를 자랑하듯 방 안을 환히 비췄다.
금고아가씨 (사람들은 이름 대신 그렇게 불렀다)는 오늘도 제복 재킷을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쳤다. 흰 와이셔츠 칼라 부분엔 미세한 땀자국이 노르스름하게 번져 있었다. 제복 포켓에 꽂아둔 볼펜은 하루 종일 돈을 세던 손가락의 힘을 그대로 기억하는지, 잉크가 미묘하게 번져 있었다.
책상 앞, 여동생이 문제집에 고개를 박고 있었다. 연필심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리기를 잠시, 어느 순간 멈췄다. 고개가 툭하며 앞으로 떨어졌다. 새마을금고에 다니는 언니는 웃으며 연필을 빼앗아 책상 위에 올려두고, 동생의 목 뒤에 손바닥을 대어 천천히 고개를 바로 세웠다. 가느다란 머리카락 사이로 샴푸 냄새 대신 학교 급식실 냄새가 희미하게 밴 듯했다.
“수학은 여기 다시 풀어. 틀린 건 형광펜으로 표시해 두고.”
“응... 하다가 모르면...”
동생은 졸음을 떨치기 위해 눈을 껌뻑였다.
“괜찮아. 오늘은 여기까지.”
언니는 형광등 아래서 동생의 얼굴을 오래도록 들여다봤다. 푸르스름해진 눈 밑, 입술은 하얗게 터 있었다.
가난은 얼굴 구석구석에 새겨지는 문장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모를 수도 있지만, 한 줄씩, 한 줄씩 읽다 보면 끝내 감출 수 없는 것.
책장 맨 위에 올려둔 도시락통이 눈에 들어왔다. 오후에 회사 구내식당에서 받아온 반찬들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영양사 이모님이 사정을 안 뒤로 한 번씩 남은 반찬들을 싸주곤 했었는데, 오늘은 일부러 몰래 챙겨두셨단다.
장조림, 소시지 야채볶음, 미역줄기볶음.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이미 마음이 흔들렸다.
안 그래도 좁은 고시원 방 안에 둘이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둘이 나란히 누우면 서로의 팔꿈치가 닿았고, 뒤척이면 금방 벽에 부딪혔다. 다닥다닥 붙은 삶, 떨어질 틈이 없는 체온. 금고아가씨는 그 체온을 책임이라 불렀다. 가끔은 짐 같았고, 또 가끔은 지탱해 주는 밧줄이었다.
밤의 소리는 얇은 벽을 타고 방으로 스며들었다. 라면 물 끓는 소리, 세탁기 탈수 소리, 누군가의 흥얼거림, 라디오에서 나오는 오래된 트로트 후렴.
고시원은 언제나 누군가의 하루가 끝나고, 또 다른 누군가의 하루가 시작되는 소리로 가득했다.
“언니.”
동생이 불렀다.
“왜.”
“나, 괜찮아.”
“뭐가?”
“그냥, 다.”
금고아가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문을 반 뼘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곰팡내와 세제 냄새 사이로 얇게 스며들었다. 그 바람이 눈가를 스치자 언니의 시야가 순식간에 흔들렸다. 이 방에서 울면, 냄새가 눈물까지 먹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늘 옥상에 올라가 울었다.
퇴근길은 겨울빛으로 가득했다.
제복 재킷 단추를 채우며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데, 골목 끝에서 소란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여동생 또래의 아이들 몇이 둥그렇게 서 있었다.
그 가운데에 동생이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가방끈을 양팔로 위태롭게 부여잡은 채.
“아, 고시원 냄새. 또 라면? 또 신김치?”
“야, 그 신발 몇 년 신은 거야. 발냄새 농축돼서 나오는 소리 들리냐?”
키득거림이 연달아 터졌다. 동생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금고아가씨는 발이 땅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회사 창구에서 억지로 웃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목 안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때, 누군가 아이들 앞을 가로막았다.
구겨진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대충 쓸어 올린 중년 남자. 김 차장이었다.
“야.”
낮고 두꺼운 목소리였다. 아이들의 웃음이 미묘하게 꺾였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집에서 안 배우냐?”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툭 던졌다.
“아저씨는 누군데?”
“누구라도 상관없지. 네댓 명이 여자애 한 명 괴롭히는 건, 애비도, 엄마도, 선생님도, 경찰도, 누구도 잘했다고 안 한다.”
말은 곧고 단단했다. 그런데 열여덟 살의 귀에는, 그 단단함이 부서지기 쉬운 유리처럼 들렸다.
“아이씨, 술 냄새.”
“꼰대다, 꼰대.”
킥킥대는 웃음이 다시 피어오르려는 순간이었다.
“야!”
금고아가씨의 고함이 골목을 갈랐다. 제복 재킷 단추를 풀 시간도 없이,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냅다 던졌고, 피할 새도 없이 어깨에 맞아버린 한 아이가 황당함에 눈을 치켜떴다.
“개XX들아, 니들이 뭘 그렇게 잘났어! 뭐가 그리 우습다고 웃어!”
아이들의 표정이 굳었다.
“뭐래, 쟤 언니 맞아?”
“맞다. 언니다. 내 동생 건들지 마라. 또 건들면!!”
언니의 목이 떨렸다.
“진짜! 너희들 가만 안 둬!!!!”
양손이 덜덜 떨려 주먹을 쥐지도 못했다. 이 떨림을 들키면 무너질 것 같아, 오히려 눈을 부릅뜨고 아이들을 노려봤다.
김 차장은 한 발 물러섰다. 설교로는 안 되던 공기가, 생생한 분노 하나에 방향을 바꿨다. 아이들은 서로를 슬쩍 보다가, 손바닥으로 가방에 맞은 어깨를 툭툭 털었다.
“야! 오늘 똥 밟았다.”
그 말만 남기고 슬금슬금 흩어졌다. 골목에 남은 건 금고아가씨와 동생, 그리고 김 차장이었다.
금고아가씨는 심호흡을 했다. 동생의 손목을 잡으려다 멈췄다. 손끝이 너무 차가웠다.
“괜찮아?”
동생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동자는 엉뚱한 곳을 보고 있었다. 울지 않으려 아랫입술을 세게 깨문 자국이 하얗게 올라왔다. 그 하얀 자국이 금고아가씨의 가슴을 더 세게 아프게 했다.
“감사합니다.”
금고아가씨가 김 차장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그는 짧게 대꾸했다. 술 냄새가 살짝 섞인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애들이라... 말을 길게 할수록 안 듣습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복 자락이 바람에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그 둘은 여동생을 학원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괜찮다”를 연습하듯 두 번 말하고서야, 동생이 진짜 괜찮아 보이기 시작했다. 언니는 학원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수많은 수험생들 그리고 부모들이 지나갔다.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 김 차장과 나란히 걷게 되었다. 말이 없이 걷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가로등 아래에서 길게 겹쳤다가, 갈라졌다. 인도 위 보도블록의 선을 밟을 때마다, 언니는 심장이 반 박자씩 빠르게 뛰었다.
‘방세는 내일로 넘겨요?’ 하고 묻던 총무의 얼굴, 건물 입구 파란 세로 간판, 2층 복도의 라면 냄새... 모든 것이 낙인처럼 몸에 달라붙었다.
방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의자에 앉은 채 고개만 하염없이 숙이고 있었다. 벽 너머에서 라디오 DJ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흘러왔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여러분.”
같은 클리셰가 이상하게 버티는 힘이 될 때가 있다. 오늘이 그랬다.
주머니 속에서 손가락이 담배를 만지작거렸다. 꺼낼까 말까, 꺼낼까 말까. ‘안 피우는 게 좋지’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다가, 갑자기 숨이 막혔다. 금고아가씨는 벌떡 일어났다.
철문을 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차가운 금속 냄새와 겨울바람이 동시에 얼굴을 때렸다. 그 바람 속에 지워야 할 것과 붙잡아야 할 것이 한꺼번에 섞여 있었다. 난간에 얹은 손바닥 아래로 쩍 하고 냉기가 들러붙었다.
이미 누군가 서 있었다. 김 차장.
담배 불이 작게 점멸했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금고아가씨는 순간 멈칫하며 담배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저... 바람만 쐬고 내려갈게요.”
“숨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가 말했다.
“담배 피우고 가세요.”
라이터가 잘 붙지 않았다. 바람이 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손가락 끝이 자꾸 미끄러졌다. 세 번째 불꽃으로도 불을 붙이지 못했다. 그때 김 차장이 다가와 말없이 라이터를 켰다. 그 끝에서 옮겨 붙은 불씨가 언니의 담배 끝을 살짝 물들이자, 하얀 연기가 곡선을 그리며 얇게 피어올랐다.
둘은 나란히 서서 말없이 연기를 한숨처럼 내쉬었다. 연기가 어둠 속으로 풀리며 금세 사라졌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 있음을,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며 배우는 지도 모른다. 그 침묵 속에서는 오히려 많은 것들이 서로에게 전달된다. 오늘은 ‘괜찮다’와 ‘고맙다’ 같은 단어들이었다.
김 차장이 먼저 담배를 비벼 껐다. 옥상 바닥에 빨간 불씨가 그려졌다가 부서졌다. 그는 계단 쪽으로 두세 걸음 갔다가, 문고리를 잡았다. 그 등 뒤를 보며 언니가 갑자기 외쳤다.
“왜... 왜 도와주셨어요?”
그의 어깨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등은 그대로인 채, 목소리만 돌아왔다.
“제 딸도... 고등학생입니다.”
문이 열렸다. 쇠 문짝이 덜컥하고 닫혔다. 그 소리가 금고아가씨의 폐 깊숙이 내려앉았다. 겨울밤의 공기는 차갑지만, 어떤 말은 그 공기보다 먼저 심장을 데운다.
‘딸’이라는 단어, ‘고등학생’이라는 단어. 금고아가씨는 담배를 쥔 손을 천천히 내렸다. 위태롭게 매달려있던 담배 불씨가 매서운 겨울바람 등허리에 맺혀 날아가며 반짝 하고 안녕을 남겼다.
밤이 깊었다. 골목 아래 포장마차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가끔 올라왔다. 세탁기 탈수 소리는 잦아들었고, 샤워실 문이 마지막으로 ‘철컥’ 닫혔다. 옥상 난간은 차갑고도 단단했다.
금고아가씨는 잠시 눈을 감았다. 눈꺼풀 뒤로 오늘 장면들이 스쳐갔다.
동생의 하얗게 질린 입술, 깔깔대던 아이들, 구겨진 양복의 남자, 옥상의 바람, 그리고 한 마디의 말.
금고아가씨는 천천히 호흡을 정리했다. 담배 냄새가 코끝에 남은 듯했다. 이상하게도, 오늘은 그 냄새가 미워지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에게 건넨 불씨가 처음으로 따뜻하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계단을 내려오며, 금고아가씨는 핸드폰을 켰다. 시계는 어느새 자정 가까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동생이 학원에서 나올 시간이 머지않았다.
‘은선이 기분은 좀 풀렸을까... 오늘은 꼭 웃게 해 줘야지.’
작은 결심이 밤공기 속에서 작게 흔들렸다가, 점점 단단해졌다.
방으로 돌아오자, 벽 너머에서 라디오 DJ의 마무리 멘트가 흘렀다.
“오늘도, 여러분 덕분에 하루가 지나갑니다.”
금고아가씨는 조용히 웃었다.
세상은 누군가의 덕분으로 겨우 굴러가고, 또 누군가는 그 덕분을 모른 채 견딘다.
그 모름과 견딤이 겹쳐져 밤을 만든다.
창문을 조금 더 열었다. 겨울 공기가 방 안의 눅눅함을 살짝 밀어냈다. 금고아가씨는 책상 앞에 앉아 동생의 문제집을 넘겼다. 한장 한장 넘길때마다 좌식의자가 삐걱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틀린 문제 옆에는 작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다시.’라고 적힌 메모가 적혀 있었다. 금고아가씨는 그 메모를 지우지 않았다. 다시라는 단어가 오늘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문이 열리고, 동생이 들어왔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러나 입꼬리는 조금 올라가 있었다.
“언니.”
“응.”
“나 오늘, 수학 쌤이 칭찬했어.”
“잘했네.”
금고아가씨는 동생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손가락끝이 아주 살짝 떨렸다.
“언니, 고마워.”
“뭐가.”
동생은 말을 멈추고, 금고아가씨의 얼굴을 오래도록 가만히 바라봤다. 말로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또 있었다.
둘이 나란히 앉아, 조용히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김이 올라오며 안경알을 뿌옇게 만들었다.
그런 밤이었다. 뿌옇지만, 끝내 보이는 것들이 있는 밤.
그 시절, 우리는 좁은 방에서 넓은 세상을 배우곤 했다.
하루를 세던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던 언니를.
낮에는 서류를 정리하고, 밤에는 마음을 정리하던 언니를.
그리고 설교가 비웃음을 부를 줄 알면서도, 양복을 차려입고 골목 끝에 서 있던 어떤 아저씨를.
세상은 그렇게 굴러갔다.
누군가는 선불로 원망을 얻었고, 누군가는 후불로 후회를 얻었다.
원망은 마음을 당겨 쥐고 우리를 앞으로 내몰았고,
후회는 시간이 지나서야 찾아와 등을 떠밀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
오늘 옥상에서 건네받은 불씨 하나로,
내일의 어둠을 조금 덜 두려워하게 되었다.
서울명문고시원, 201호.
좁디좁은 방 한 칸에도 밤은 오고,
그 밤에도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었다.
그때 우리는 몰랐다.
그 웃음과 울음이, 먼 훗날 우리가 붙잡을 전부가 될 줄은.
그러니 부디 기억해야 한다.
어느 골목, 어느 층, 어느 방에서든
작은 불빛 하나쯤은 늘 켜져 있었다는 것을.
그 불빛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겨우 그러나 분명히, 살아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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