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글이 잘 풀릴 때든, 막힐 때든
우리는 가끔 말없이 약속하듯 그렇게 마주 앉곤 했다.
오늘도 따로 약속한 건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셋이 칵테일바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조용한 조명 아래,
잔에 비친 불빛이 서로의 얼굴에 흔들리듯 묻어났다.
잔을 살짝 돌리던 여자 후배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빠, 요즘 진짜 좋아 보여요.”
“왜, 갑자기?”
“아니 그냥, 지난달에도 얼굴 좋아 보였는데... 오늘은 더 좋아 보여요.
뭔가 탄력 있어요.”
그녀가 웃으며 잔을 굴렸다.
남자 후배도 맞장구를 쳤다.
“피부 톤도 그렇고요.”
나는 웃었다.
“탄력이라... 글쎄, 아마 마음이 조금 가벼워져서 그럴지도 몰라.”
여자 후배가 눈을 반짝였다.
“좋은 일 있으세요?”
“음, 그냥… 좀 꺼내봤거든.”
“뭘요?”
“기억들.
그냥 지나간 줄 알았던 사소한 순간들.”
그 말에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
“오~ 또 뭔가 써내려갔구나!”
그 웃음에 나도 따라 웃었다.
“예를 들면, 복도에서 고양이랑 눈 마주친 거.
하얀 털에 천천히 깜빡이던 눈빛이
‘괜찮아요?’ 하고 묻는 것 같았거든.”
여자 후배가 킥킥 웃으며 말했다.
“오빠, 그건 감성 고양이다!”
“그날부터 좀 달라졌어.
접수처에 서류 내러 갔다가
서류 대신 커피를 내밀었지 뭐야.
직원도, 나도 그냥 웃었어.
그 이후로 이상하게... 작은 일에도 말이 되더라.”
남자 후배가 폭소했다.
“형, 진짜요? 그건 드라마보다 웃기네요.”
“그냥 정신줄이 커피에 묶여 있었던 거지.”
우린 셋이 동시에 웃었다.
그 웃음은 유리잔에 닿은 불빛처럼 부드럽게 번졌다.
“그날 작업실에서 다른 작가가 그러더라.
‘오늘은 글 잘 써질 것 같지 않아요?’
근데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더라.”
“그 말 좋다. 괜히 듣고 싶다, 그런 말.”
여자 후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강 따라 자전거 타던 날도 떠올랐어.
아이 풍선을 놓쳐 울먹이는데
지나가던 청년이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이건 날아가지 않아’ 하더라.”
남자 후배가 조용히 말했다.
“그거 영화 같네요.”
“시장에선 과일가게 아저씨가
참외 하나를 더 얹어주셨어.
그날 하루가 괜히 가벼워졌지.
과일 때문이 아니라,
그 말 한마디 덕분에.”
조용한 음악이 흘렀다.
잔을 내려놓는 소리만 잠시 울렸다.
여자 후배가 물었다.
“그 이야기들… 다 글로 쓰셨어요?”
“응. 《오늘은 꺼내보기》라는 제목으로.”
“와, 제목 너무 좋다.”
“그럼 그 얘기 쓰고 나서, 좀 정리됐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한 장면씩 꺼내보니까
어디까지 왔는지 알겠더라.”
남자 후배가 잔을 들어 올렸다.
“그럼 우리도 한번 써볼까요?”
나는 작게 웃었다.
“그래, 오늘은 내가 꺼내봤으니까
너희도 한번 꺼내볼래?”
그 말에, 칵테일잔 안쪽으로
잔잔한 미소가 일렁였다.
작은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닿는 순간,
그건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다시 살아 숨 쉬는 문장이 되니까.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이렇게 한 자리에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일 자체가
이미 하나의 수필이 아닐까.
그 안엔 웃음이 있고, 실수가 있고,
사람 냄새가 있었다.
글이란 결국,
이렇게 다시 마주 앉는 마음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칵테일바를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빛바랜 별 몇 개가 희미하게 반짝였다.
오늘의 대화가, 언젠가 누군가의 문장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게 글의 시작이라면,
나는 이미 충분히 쓰고 있었다.
그렇게, 1편부터 7편까지,
짧은 이야기들을 꺼내보며
저 역시 잊고 있던 마음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 장면 한 장면은 작고 조용했지만,
그 기억들을 문장으로 이어내는 과정 속에서
삶의 온기와 숨결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었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그리고,
작은 기쁨이 놓여 있는 곳,
《오늘은 꺼내보기, 너도 꺼내볼래?》 1파트를
많이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잠시 한 주는 숨을 고르고,
더 좋은 ‘꺼내보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2파트 《오늘은 꺼내보기, 너도 꺼내볼래?》도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응원과 좋아요, 구독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다음 월요일. 또 꺼내보러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