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사랑 안기 17화

기차역

by 김소희

“아버지는 기차를 타고 돌아오실 거란다.”

7년 전 어머니가 하신 말씀에 매일같이 기차역에 나가 아버지를 기다렸다. 변두리 마을이라 하루에 기차가 한 번 지나갈까 말까 함에도 나는 매일같이 기차역에 나가 나의 아버지를 기다렸다. 성인이 막 된 지금에서야 어머니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주변 도시에도 공항이 없기에 비행기를 타고 돌아온다고 하면 내가 실망할 것이고, 차를 타고 돌아온다면 지나치게 기대할 것이라는 걸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기차역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기차역 바닥에 누워 책을 읽었다. 기찻길 옆 잔디에 앉아 책을 읽었다. 역무원은 기차가 오는 시간이 아니면 기차역에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하는 이 일은 이제 성인이 된 나도 맡을 수 있게 됐다. 기차표를 끊어주고 기차를 맞이하고, 보내는 일은 귀찮은 일임에 분명했다. 많지 않은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 이장님에게 이번 달은 빼주세요, 하는 얘기를 어렸을 때부터 듣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기차를 좋아하셨다. 이번 달은 빼달라는 어른이 계시면 아버지가 나서서 제가 하겠습니다, 하곤 했다. 한 달에 한 번 역무원 배정 시간표가 나온다. 이장님께 찾아가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이제 기차역은 내 세상이 되었고 기차가 언제 올지, 얼마나 자주 올지 직접 관리할 수 있었다.


기차가 오지 않는 날이면 기찻길을 가로질러 철도 위에 누웠다. 누워서 책을 읽었다. 사람의 발길이 없을 게 확실한 날이면 그랬다. 청소년기 때나 할 법한 위험한 행위는 점점 무모해졌다. 기차가 오는 날이어도, 우리 역에서 정차하지 않으면 기찻길에 누워 기차가 오는 소리를 들었다. 쿠궁- 쿠궁- 쿠궁- 진동과 함께 소리가 커지면 그제야 철도를 빠져나와 기차로부터 나오는 바람을 맞는 게 나의 일이었다. 책을 읽다 기차 소리가 들리면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내가 가고 있어, 기차가 말한다. 나를 기다리는 네게 가고 있어, 기차가 속삭인다. 나에게로 와 멈추지 않고 지나쳐버릴 기차 소리를 듣는 게 속상해져 기차가 정차하는 날에도 누워서 귀를 기울였다. 가끔 기차표를 끊은 마을 사람들이 있을 때면 기차가 정차할 때까지 기다렸다, 출발할 때까지 기다렸다, 기차가 가버린 후에 배웅 나온 가족들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 기차가 가는 소리를 담았다. 다시 돌아올게, 말했지만 믿지 않았다. 멀어지는 기차 소리를 들으면 내가 기다렸던 소리가 아님을 깨닫고 다시 역무소에 가 책을 읽었다. 내게 오는, 내게 와서 멈추는 기차 소리를 듣고 싶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8년째 된 겨울이었다. 마을 사람이 서울에 갈 일이 있어 기차표를 끊었다. 오후 8시에 정차하는 기차라 사위는 어두웠다. 단 한 명만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웅하는 가족도 없었다. 한 명이 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사 준비를 끝내고 기차를 기다리는 나에게 오늘이 주어진 날인 것만 같았다. 어둠을 틈타 기찻길로 내려가 철도에 누웠다. 쿠궁- 쿠궁- 쿠궁- 내가 가고 있어, 네게 가고 있어. 불빛이 멀리서 다가오지만 귀를 뗄 수 없었다. 더욱 커지는 소리에 심장이 울렸다. 밤의 기찻길은 불빛이 너무나도 센 걸 몰랐다. 지나치게 밝은 불빛에 눈을 감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제 나와야 하는데, 하면서도 드디어 내게 오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가만히 누워 있었다. 경적 소리가 울리고 기차는 내게 왔다. 아버지가 드디어 내게 왔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의 심장 소리를 영원히 간직했다. 쿠궁- 쿠궁- 그날 이후 우리 마을 기차역은 폐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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