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잡아라

체화되지 못하는 지병

by 고운 저녁

귀 잡아라


귀는 늘 흘러내려

귓등으로 흘러내려

어머니 말씀 흘러내려


걸어도 걸어도 걸리지 않는 문처럼

걸어도 걸어도 걸리지 않는 훈계


귀는 먼지 낀 라디오처럼

주파수를 놓친 채

이명을 앓고

말씀은 고장 난 김치냉장고 안에서

담지도 삭히지도 못한 채

날마다 유통기한 지난다


한쪽 귀는 막히고

한쪽 귀는 뚫려 있어서

바람조차 드나들지 못하고


귀 잡으러 온종일 헤매다가

아무 귀나 주워 걸어도 보지만

이내 흘러내려


말씀들 떠다닌다

구천을 떠도신다

길 잃은 원혼들 사이에서

숨바꼭질하신다


귀를 꿰매어 꽁꽁 붙여놓아도

자꾸만 실밥이 터져버려서

귓등에서 덜렁덜렁 춤만 춰서


귀를 귀하게 귀에 대고 있느라 손이 모자라

손 하나 더 주십사 기도하는 사이

귀는 또 흘러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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