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이 맞는 이종교배가 만들어내는 복제 불가능한 힘
‘‘한 우물만 파라’는 말,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꾼 혁신의 상당수는
오히려 다른 우물과 섞였을 때 나왔다.
짐 매켈비는 『언카피어블』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 어떤 사업이라도 이종교배로 탄생한다.”
아이폰이 대표적이다.
아이폰은 단순한 전자제품이 아니라,
디자인과 기술, 예술과 공학이라는 서로 다른 DNA가 한 몸에 담긴 결과물이었다.
그 결합이 세상을 ‘혁신’이라고 부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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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의 미학 – 사례로 보는 결합의 힘
브랜드 보이(안성은)의 『믹스』는 서로 다른 분야의 언어와 감각이 만나 새로운 서사를 만든다고 말한다.
이 결합은 단순히 두 가지를 ‘합쳤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가 부딪히며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 리처드 브랜슨 : 항공·음악·우주산업에 ‘모험과 자유’라는 브랜드 철학을 일관되게 융합한다.
• 일론 머스크: 자동차에 IT·에너지·우주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모빌리티 생태계를 구축한다.
• 마틴 마르지엘라: 하이패션에 해체주의와 예술적 개념을 결합해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창조한다.
이런 사례들은 각 영역이 본래 가지고 있던 한계를 깨뜨리고, 새로운 서사와 감각을 만들어냈다.
결국 ‘믹스’란, 서로 다른 것들이 충돌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창조의 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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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패션 업계는 콜라보레이션 열풍으로 들썩였다.
2004년 H&M × 칼 라거펠트, 2005년 H&M × 스텔라 맥카트니, 2006년 H&M × 빅터&롤프.
SPA 브랜드와 럭셔리 브랜드가 만나 문화적 파장을 일으키던 시절이었다.
유니클로도 2009년 +J(질 샌더), 2011년 언더커버 협업으로 SPA의 영역을 확장했다.
미니멀리즘, 기능성, 실험적 디자인을 대중의 옷장에 들여놓으며 “SPA도 감도 높은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을 심었다.
그 열기 속에 나 역시 있었고,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꼭 패션 브랜드끼리만 해야 하나?”
그 호기심은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똑똑한 사람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반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그들의 선택이 만들어낸 답이 연이어 드러났다.
• DHL × Vetements : 노란 바탕에 붉은 레터링, ‘속도’와 ‘전달’을 상징하는 물류의 얼굴.
• IKEA × Balenciaga : 파란 쇼핑백 하나로 소환되는 북유럽 생활감과 친숙한 디자인.
• LEGO × Adidas : 원색 블록의 형태와 색감이 불러오는 놀이와 창의성의 세계.
이들의 공통점은 누구나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아이코닉 심볼을 기반으로 새롭게 재해석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브랜드 고유의 철학과 스토리를 녹여냈기에, 패션이라는 낯선 무대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었다.
예전의 나는 패션과 유통이라는 익숙한 울타리 안에서만 답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이런 사례를 보며 깨달았다.
정답은 없다는 것.
그리고 다른 영역과의 결합이야말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열쇠라는 것.
다만, 무조건 다른 영역과 손잡는다고 확장되는 것은 아니다.
본질과 결이 맞는지, 명분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 이유가 분명하지 않으면, 그건 그저 단발성 이벤트로 사라진다.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 부족한 것을 메우고, 그 결합에서만 탄생하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그게 바로 내가 ‘믹스’에서 발견한 가장 큰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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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교배가 주는 ‘유니크함’
결합은 단순한 스킬 조합이 아니다.
그 안에는 내가 살아온 시간, 관계, 실패, 성공이 모두 녹아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겉으로만 비슷하게 따라 해도,
같은 결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짐 매켈비가 말한 ‘Uncopyable(복제 불가능함)’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결국 나만의 서명(Signature)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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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통찰 – 깊이와 넓이의 균형
나는 이 과정을 겪으며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 깊이는 나를 ‘전문가’로 만들고,
• 넓이는 나를 ‘차별화’하게 만든다.
이 두 축이 만나야 비로소 오래 살아남는 힘이 생긴다고 본다.
그걸 가장 또렷하게 느낀 건 2024년 연말에 열린 ESC 토크 콘서트 자리였다.
패션 브랜드 대표인 박화목님(마르디 메크르디), 글로벌 마케팅 리더인 서은아 상무님(메타), 그리고 요양 서비스 스타트업 케어링의 김태성 대표님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산업의 사람들이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공통점이 분명히 있었다.
각자의 전문성(깊이)에 뿌리를 두면서도, 전혀 다른 영역과의 접점을 넓히며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왔다는 점이었다.
• 박화목 대표님은 패션에서 출발했지만, 주얼리·프래그런스·아동복 등으로 브랜드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 서은아 상무님은 27년간 글로벌 IT기업을 거치며 ‘브랜딩’을 단순히 마케팅을 넘어 삶의 태도로 풀어냈다.
• 김태성 대표님은 요양 서비스라는 사회적 영역에서 스타트업의 혁신 방식을 결합해 글로벌 투자까지 이끌어냈다.
8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인 그 자리는, 단순히 강연을 듣는 자리가 아니라 깊이와 넓이가 어떻게 교차하는가를 눈앞에서 확인하는 장이었다.
분야가 달라 오히려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네트워킹 시간까지 열기가 이어진 걸 보면 모두가 같은 깨달음을 공유했을 것이다.
나에게도 분명한 배움이 남았다.
‘전문가로서의 깊이’를 파고들되, 전혀 다른 분야와의 연결에서 오는 ‘넓이’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결국 이 균형이야말로 브랜드든 개인이든 오래 살아남는 힘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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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이종교배를 찾아서
우리는 종종 ‘튀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섞이되 나답게 섞이는 것이다.
내 안의 서로 다른 경험과,
내 주변의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게 하는 것.
그 과정에서 탄생하는 건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러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을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어떻게 남들과 융합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즉, 덕을 쌓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비로소,
나만의 경험이 깊어지고
나의 그릇도 한층 커지며
그 안에서 억지로 튀지 않아도 진짜 ‘나다운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단일한 재능보다, 융합된 경험이 더 강하다.
그건 복제가 불가능한 나만의 서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