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은 주어지지만, 자라는 건 토양과 물의 몫이다.
일본 패션, 라이프스타일 잡지계의 살아있는 전설 이시카와 지로(주식회사 제이아이) 님은 도쿄 다반사와의 인터뷰 중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변화를 읽는 힘은 책상 앞에서 배우는 이론이 아니라, 술자리에서 친구들이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분위기 같은 작은 징후를 민감하게 감지하는 데서 비롯된다”라고.
그 문장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세상의 변화를 보는 감각은 본래 타고난 능력에 가까운 걸까?
아니면 끊임없는 훈련과 관찰로 길러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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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와 환경 사이
우리는 흔히 운동신경이나 감각 같은 것들을 “타고났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문득 의문이 들곤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는 선천적 재능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스포츠나 엔터테인먼트 같은 영역은 단기간에 드러나는 성과가 크다 보니, 타고남의 힘을 더 크게 인정하는 것 같다.
한국의 대표 4번 타자 이승엽도 “타고난 건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땐,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하지만 유아기와 유년기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후천적으로 길러진 것조차 너무 일찍 몸에 배어 나중에는 마치 ‘타고난 것’처럼 굳어져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도 종아리가 꽤나 두꺼운 편이다.
누군가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거겠지”라고 말하겠지만,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사정은 조금 달랐다.
나는 어려서부터 늘 많이 걸어야 했다.
초등학생(국민학생) 때는 집 근처 산으로 친구들과 놀러 다니거나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 오는 일이 일상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강북 끝자락에 살던 탓에, 한 번 강남에 나가면 하루 일정을 마칠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학교, 학원, 친구들과의 약속까지 이어지면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돌아보면, 이 생활이 지금의 몸과 습관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훨씬 큰 몸집을 자랑하는 헬스 트레이너는 내 종아리를 보며 “타고나서 부럽다”라고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내 아버지의 다리보다 내 종아리가 훨씬 두껍다.
유전자라기보다, 어릴 적 생활환경이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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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과 토양의 비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타고남(Natural born)은 씨앗이고, 경험과 환경은 토양과 물이다.
우리가 “타고났다”라고 부르는 많은 것들은 사실 아주 어린 시절 반복된 습관과 경험이 몸에 스며들어 후천적으로 굳어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져서 선천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진 않을까 생각해 본다.
씨앗만 있다고 식물이 자라지 않듯,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잠재력은 발휘되지 않는다.
반대로 씨앗이 작아도 풍부한 토양과 물이 있다면 크게 자라날 수 있다.
손흥민이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그의 씨앗은 아버지 손웅정 감독으로부터 나왔다.
2003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공 80개가 담긴 냉장고 박스를 끌고 나와 기본기를 훈련시켰다.
“나는 흥민이가 하는 훈련을 모두 함께 했다. 아이 혼자 두지 않기 위해서였다.” — 손웅정
“아버지가 없었다면 저도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 손흥민
이렇게 훈련과 사랑 즉, 토양과 물이 손흥민이라는 씨앗을 키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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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것의 양면성
하지만 씨앗이 항상 축복으로만 작용하는 건 아니다.
리미 푸(Limi Feu)라는 디자이너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라는 디자이너의 이름은?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후자의 이름은 익숙할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일본 패션을 대표하는 거장,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의 딸이다.
디자이너들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는 매거진에서 리미 푸에 대한 코멘트였다.
“장점: 요지 야마모토의 딸 / 단점: 요지 야마모토의 딸.”
— 어느 패션 평론가의 말처럼, 이 타고 남은 축복이자 짐이었다.
리미는 도쿄에서 디자이너로 데뷔한 뒤 파리까지 진출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미학을 존중하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결국 타고난 배경이 기회이자 굴레였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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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것과 길러진 것의 경계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우리가 말하는 ‘타고난 것’은 어디까지가 진짜 유전이고, 어디부터가 환경일까?
유년기의 반복된 습관, 집안의 분위기, 가풍 같은 것들은 과연 타고난 걸까?
아니면 너무 이른 시기에 형성되어, 결국은 ‘타고난 것처럼’ 굳어져 버린 걸까?
이 질문은 단순히 과학적·심리학적 호기심에 머무르지 않는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로 연결된다.
내가 갖고 있는 성향, 몸, 태도, 심지어 생각까지도 어디까지가 ‘원래의 나’이고 어디서부터 ‘만들어진 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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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중요한 건
아마도 답은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유전자와 환경은 늘 얽혀 있다.
태어날 때 주어진 것 위에, 매일의 선택과 경험이 덧칠되며 지금의 내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결론 내리고 싶다.
‘타고난 것’과 ‘길러진 것’을 구분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둘이 어떻게 섞이며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는지 이해하는 일이라고.
작은 징후를 감지하는 감각이든, 두꺼운 종아리든,
그건 결국 나의 일부다.
어쩌면 나는 오늘도 그 경계 위에서 조금씩 자라 가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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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길러진 것일 수도 있다.
길러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타고난 것일 수도 있다.
그 경계와 틈은 결국 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며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