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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는 마침내 차 뒷문을 열었다

백단향의 복도와 나무 껍질의 파편


White sandalwood lingered, cold yet sensual, a root cut through the air.


그녀는 복도를 걸어 내려왔다.

웅성거림은 멀리서 바다처럼 잦아들었고, 공기는 묘하게 무거워졌다.

숨을 들이쉴수록 더 촘촘해지는,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폐 안으로 스며들었다.

복도 끝에 그가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손짓하지도 않았다. 부재도, 개입도 아닌 그저 그곳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무게감으로.

빛은 그의 어깨를 그림자와 실체 사이에 놓았고,

그가 풍기는 고요함은 박수 소리보다 더 무겁게 공간을 채웠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에는 향이 번져 있었다. 차갑고, 정제되어 있으며, 부인할 수 없는 존재감.

그것은 향수가 아니었다. 생각의 냄새였다.


막 눌러 찍은 잉크의 금속성, 손끝에서 바스락거리는 종이의 마른 속삭임,

언어가 몸을 얻는 순간의 고요한 진동.

그러나 그 맑은 투명함 아래에는 은밀한 온기가 있었다.

절제된 외피 아래 숨어 있는 취약함의 신호. 그리고 끝내 섞여드는, 말라버린 종이처럼 조용하게 견고한 백단향의 냄새—그것은 마치 뿌리 깊은 나무의 단면을 잘라낸 듯, 차갑고도 관능적인 우디향이었다. 쌉쌀한 가죽과 파피루스 노트가 섞여 만들어내는 날것의 질감, 그리고 그 아래 흐르는 고요한 온기. 그 향은 두 사람 사이의 무언의 신호였다.

The scent was paper and root, leather and papyrus, carrying her voice into being.

이것은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가득 메운 무언의 신호였다.

종이 안에만 갇혀 있던 그녀의 목소리는 마침내 몸을 얻었고,

이 향기는 이론과 존재를 잇는 다리가 되어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졌다. 그녀의 말이, 그녀의 몸과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음을.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언어는 필요치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마디를 건넸다. 낮고 간결하게, 이미 드러난 사실을 확인하듯.


"당신은 떨지 않았어요."



그 말은 향처럼 짙고 무겁게 공기 속에 가라앉았다. 그 순간, 그녀는 드물게 찾아오는 안도감을 느꼈다.

감각과 육체, 생각과 목소리가 같은 호흡 안에서 정렬되는 순간이었다.


학회장의 복도는 끊임없이 그 정렬감 안에서 이어졌다. 그녀는 복도를 빠져나와 혼자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가웠던 백단향의 복도를 뒤로하고, 그녀의 발은 닦지 않은 잿빛 먼지가 가득한 현실의 콘크리트 바닥을 밟았다. 그 먼지는 세상의 무심함을 대변하는 듯했지만, 더 이상 그녀를 위협하지 않았다.

그녀는 문득 멈춰 섰다. 그리고 천천히, 차 뒷문을 열었다.



뒷문은 마침내 열렸다.


그것은 내면의 정렬이 외부 세계로 향하는 하나의 출구였다. 낡고 잿빛인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단호한 해방의 순간이었다.

Not perfume, but presence—dense, suffocating, undeni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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