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풍경 9

블랙베리 5

by 도린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우리 가족의 연례행사가 어김없이 시작된다.


요리 솜씨 좋은 막내딸이

정성껏 차려내는 스테이크와 가지각색의 요리들.

멋스럽게 플레이팅 된 가족들을 위한 식탁은

어느 고급 레스토랑 부럽지 않게

눈과 입을 즐겁게 해 준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반짝이는 트리 불빛 아래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막내의 솜씨로 빚어진 크리스마스 디너를 즐겼다.


그리고

우리 식탁 위에 빠지지 않는 또 하나의 주인공,

다섯 양동이나 담아 만든

블랙베리, 복분자주 한 병.


스테이크 한 점에

복분자주 한 모금,


한 잔, 또 한 잔—

마셔도 마셔도 마르지 않는 '마농의 샘'처럼

그 깊은 자줏빛 향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진해지는 듯하다.


한 모금 머금을 때마다

복분자를 정성껏 따던 엄마의 손길,

거르던 장면마다 떠올랐던 장모님의 미소,

멀리서도 늘 마음으로 손녀들을 안아주던 외할머니의 다정한 말투가,

온 가족 마음속에 따스한 기억으로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두런두런 피어나는 이야기꽃 속에

추억이 담긴 잔을 부딪치며

성탄의 밤이 깊어간다.



작년 크리스마스 만찬:포도주병에 담긴 복분자와 아이스와인


keyword
수, 일 연재
이전 09화기억 속의 풍경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