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풍경 17

감 따던 날

by 도린

가을빛 하늘 아래

감이 익어가고
밤이 영글어 가고
덩달아 나도 철이 들어가는 걸까

따묵따묵 매달린 뺨을
주황으로 물들이고
구름 사이 얼굴을 내민
햇살이 정겨워라

이마의 땀을 훔치고
긴 장대로 하늘을 찌르듯

발돋움하던 동심


뽀얀 시상(柿霜)을

쓰윽쓰윽 닦아내고

떫은맛 한입에

부르르 가을을 삼켰다



가을이 익어갈 무렵이면,
나뭇가지에 달린 감도 곱게 익어 갑니다.

감나무 가지는 연해서, 아무리 굵은 둥치라도
감 따기 위해서는 올라갈 수 없고,
사다리나 긴 장대를 이용해야 합니다.

동그랗게 말린 주먹처럼 꼭 쥔 영근 감을
장대 끝 망태기에 담아 비틀어 똑 따고,
소쿠리에 차곡차곡 담습니다.

성급히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아직 떫은맛에 인상이 찡그려지지만,
풍성한 가을 속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햇살 아래, 온 가족이 함께 익어가는 날입니다.

마을 어귀 감나무들이 주황빛 등불처럼 반짝였고,
나는 장대 끝 망에 담긴 첫 감을 잡으며 설렘을 느꼈습니다.
여문 감을 휘어지도록 품은 감나무 사이로 부드러운 햇살이 흘러내리고,
마당을 오가던 부모님과 작은 나의 그림자가
조용히 어우러졌던 순간이었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따라 그린 그림: 졸작이지만 너무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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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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