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5: 천사를 죽이는 것은 악마뿐이다
ABS 아나운서는
익숙한 손길로 봉투에서 USB와 아이들 사진을 꺼낸다.
“현재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 일명 천사어린이들 납치사건의
범인들이 대통령의 손가락을 요구한 지 24시간이 되어갑니다.
아직 약속한 시간이 남았는데 이례적으로
오늘 아침방송 30분 전에 방송국으로 이것이 도착했습니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장면에 평화로운 BGM이 들린다.
자막
“이 천사 같은 아이들을… 죽이실 겁니까?"
SNS 실시간 반응
“#대통령답변하라”
“#국민의 손가락_투표결과”
“#이게 나라냐_리턴즈”
“#천사를 죽이는 것은 악마뿐이다”
경찰청 내부 회의실의 이형사
“아이들의 죽음은 없었어요.
영상은 조작된 게 확실합니다.
영상분석팀에서도 최종 결론을 내렸습니다.”
박반장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알아. 조금 전 직접 보고, 듣고 왔어. 맞을 거야.
아이들은 살아있겠지...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형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지금 중요한 건 뭐죠?”
박반장은 예리한 눈빛으로
“‘아이들이 살아있다’고 발표하면, 사람들은 납치범이
‘악인’이 아니라고 여기게 될 거야.
납치범들도 그걸 알았겠지. 지금 보니 영상이 허접하잖아?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거야.
결국
그들은 ‘정의로운 복수자’나
‘이득을 원하지 않는 자’ 같은
이미지를 가져갈 거라고... 우린 분노 대상을 정해두고
편 가르기를 좋아하니까...
어느새 사람들은 그들 편에 서 있을지도 몰라.
그럼, 테러에 굴복하지 않고 도망쳤던 김영수는 뭐가 되지?
대한민국의 수호자 인가? 아니야… 그냥 등신이지...”
이형사는 정말 궁금한 듯이
“결국 그들의 목적이 뭡니까?”
박반장은 볼펜을 깨물며
“목적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목적은 대한민국의 정의실현?
뭐 그런 거잖아. 더 중요한 게 있어.
과연 대가리일지… 아니면 꼬리일지…”
아이들은 자고 있고
납치범들은 회의를 하고 있다.
뱀파이어는
가장 높은 의자에 앉아있다.
“우리 팀 생각은? 자, 대통령님의 선택은?”
엘프는 당연하다는 듯
“천사를 죽이는 건 악마뿐이라던데?
악마보다는… 손가락 없는 대통령이 낫지 않을까?”
고스트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솔직히 모르겠어.
그분께서는 워~낙 겁 많기로 유명하잖아?
뭐 우리나라 두 번째 여성대통령이라는
별명도 있는데 뭐… 와이프한테
찍소리도 못하는 거 보면 맞는 거 같기도 하고...
확실한 건 뭐가 됐든 대장 말대로 되겠지.”
스마트폰의 메시지를
확인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맞아. 다 내 뜻대로 되겠지. 아니 그들의 뜻대로 되겠지…”
ABS 국민토론 생방송
패널들은 토론 동아리 대학생들
납치 피해 아동 부모, 여야 정치인 들이다.
대학교 토론 동아리 회장은
“그들은 악인이 아닌 것 같아요.
이 썩은 사회를 도려내는 필요악 같은 느낌?
그들의 타깃은 결국 언젠가는 저희 국민들이
먼저 잘라내야 할 사람들 아니었나요?
영상 전문가들도 그들의 살인은‘조작이다’
라고 말하더라고요. 저도 여기 오기 전까지
신뢰 있는 채널에서 여러 번 확인했는데…
진짜 조작이더라고요.”
보수 정치인은 확신 있는 목소리로
“맞아요. 그래서 대통령께서는
손가락을 자르면 안 됩니다.
결국 모든 범죄는 언젠가는 잡히기 마련이죠.
사필귀정이란 말입니다.
그들이 언젠가 잡히게 되는 그 순간,
그들도 살인이라는 죄를 뒤집어쓰고 싶지는 않겠죠”
납치피해아동 부모대표는
“그래도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도박할 수는 없잖아요.
그들이 원하는 건 대통령의 손가락 두 개입니다.
아이들 목숨과는 비교도 안 되죠.
그동안 납치범은 자기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번 한 번만 요구를 들어줬으면 해요.”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께서 사안의 중대함을 인지하고
참모들과 무기한 토론 중입니다.
정부는 그리고 대통령께서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진보 정치인은
“'테러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원칙에는 저도 동의하지만…
지금 정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
전 못 믿겠습니다.
경찰은 뭘 하고 있죠?
드론 수사팀 만든다더니 예산만 낭비했고
경제, 물가도 엉망. 이런 나라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죠.
게다가 영부인 가족 관련 이슈는요?”
사회자 급하게 말을 끊으며
“논점 벗어나지 말아 주세요.
지금은 ‘대통령의 손가락’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토론이 진행될수록
나라 전체가 뒤숭숭해진다.
방송국 회의실에서
ABS 편집국장은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내일도 영상 오겠지? 시청률은?”
편집팀장은 두리번 대며
“역대급입니다.
대한민국 언론이 우리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편집국장릉 신이 난 얼굴로
“만년 5위 방송국이 현재는 1위가 됐지.
국장님은 뭐라 하셔?”
편집팀장 비밀처럼
“혼자 통화하는 시간이 많으세요.
축하 전화인지… 방송국 간 계약인지…
어쨌든 전례 없는 대박이에요.”
편집국장은 무언가를 계산하더니
“광고 단가, 브랜드 가치,
수신료 징수권까지… 돈으로도 가늠이 안돼
몇 백억은 필요한 일들인데…
아니 돈으로도 해결되지 않아
방송국의 가치를 올리는 것은,
사람들이 몇 십 년간 보아오던
습관을 바꿔야 하는 거거든…
불가능한 일이지 애초에… 이러다가 방송국 자체를
새로 지어야겠는걸?”
“처음 영상 왔을 때 고민도 없이
그냥 송출했잖아요.
방통위 징계감일 수도 있었는데…
하여간 국장님의 강단은 대단해요.
대충 넘어져도 황금밭이니…
연말에 보너스 다들 기대하고 있어요…
마치 황금밭에 넘어진 게 아니라
황금을 만드는 것 같은…”
둘은 약속한 듯 서로를 바라본다.
알 수 없는 침묵이 가득하다.
“설마… 에이...”
둘은 국장실을 바라본다.
국장은 누군가와 통화 중이다.
웃고 있다.
아이들은 물놀이 후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오크는 무언가를 먹으며 아이들과 놀아준다.
엘프는 영상 촬영 중이다.
고스트는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혼잣말로
“그래 그래
모든 게 너무 순조롭네… 모든 게 순조로워
위기감이 없으니 심지어 졸리기도 하네… ”
뱀파이어는 들고 있는 플래카드를 건넨다.
“자, 이제 준비한 플래카드를 들고
조명 좋은 곳으로.”
고스트는 플래카드를 들고 영상 촬영 세팅을 하고 있는
펌킨헤드에게 간다.
대통령 관저
“지금 대통령님 의원 시절
영상까지 퍼지고 있고,
이미 해소된 의혹들도
다시 소환되고 있습니다.
영부인에 관한 논란들도 더더욱…”
대통령은 초조하게 방을 걸으며
“아직 결정은 안 했지만…
황 박사가 말끔히 자를 수 있을까?”
“요즘은 마취가 좋아서…
다리 한쪽 잘라도 고통 거의 없을 겁니다.”
무언가 실수했다는 듯
대통령의 눈치를 살핀다.
사납게 노려보며
“아직 결정 안 했어. 하지만 황 박사한테
이야기하긴 해.”
비서실장은 태블릿을 들고
“납치범 영상 조작이라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눈이 커진 대통령
“진짜야? 어디 봐.”
조작 분석 영상을 여러 번 다시 본 후
"확실하네…
경찰은 뭐라 그래?”
비서실장이 태블릿을
돌려받고 품에 안은 후
“조작은 확실하답니다.
확실하지만, 언론 발표는 안 한다고...”
“그렇지… 할 수가 없지…
아니… 하면 안 되지…
결국 내가 피 봐야 한다는 거잖아.
어떻게 생각해?”
일동 침묵.
비서관이 조용히 손든다
“자르지 않으면…
국민의 분노가 대통령님께…”
“알아, 나도. 중요한 건…
결국 잘라야 한다는 거지?
외통수네…”
박반장 포함 수사팀은
촬영 영상 리뷰 중이다.
경찰이 ‘수사하는 척’하는
무편집 영상은 엉망진창이다.
촬영용 드론과 카메라맨도 보인다.
경찰국장은 한숨 쉬며
“쟤 표정 뭐야?
적극적으로 해야지!
우리도 모가지 걸린 일인데…
언론 대응용 영상... 잘 편집해.
기존 촬영본은 다 삭제하고”
부국장은 무언가를 메모하며,
“언론은 어떻게 하죠?”
경찰국장은
한심하다는 듯이 말한다
“몰라서 묻냐? 우린 그냥
‘인질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만 말해. 주인공은 대통령이야.
나 같은 말단 공무원은 조명, 엑스트라야.”
야심한 대통령 관저에서
대통령이 무언가를 자른 후
이리저리 보고 있다.
테이블에는 손가락이 잘린
자신의 선거 포스터가 여러 장 널려있다.
아이들은 자고 있다.
멀리서 산악용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고스트가 들어온다.
“갔다 왔어.”
엘프는 물을 건네주며
“수고했어.
이제 곧 우리가 만든 마지막 영상이 나가겠지.
다들 와서 함께 방송 보자고 해”
쉬고 있던 납치범 일당은 모두 사무실로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