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조지 오웰 George Orwell
군산역에서 내린 진우는 렌터카를 몰고 시간여행마을로 향했다.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붉은 벽돌 건물, 일본식 기와지붕, 철제 난간들이 이국적이면서도 낯익은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히로쓰 가옥 앞 벤치에 앉아 식혜 캔을 열자, 스르르 김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달콤한 향이 퍼졌다.
그 순간, 검정 양복에 단정한 셔츠, 짧은 콧수염을 가진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오웰: “지금 당신이 드시는 이 음료에도 언젠간 감시 코드가 찍힐지 모릅니다.”
진우는 한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진우: “에이 설마요…”
오웰: “방심할 수 없죠. 그런데, 이 마을… 참 흥미롭군요. 왜 이런 옛 건물들을 보존하는 거죠?”
진우: “그 시절의 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서요. 기록이 곧 경고니까요.”
오웰: “경고라… 하지만 기록이 항상 진실을 담진 않죠. 기록도 통제될 수 있으니까.”
진우: “그건 맞지만, 그렇다고 기록을 없앨 순 없죠.”
오웰: “맞습니다. 언어도 그렇습니다. 단어를 줄이면 사고가 줄고, 사고가 줄면 저항도 사라집니다.
당신들은 CCTV가 있는 거리를 걸으면서도 안심하나요?”
진우: “네.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요.”
오웰: “그게 바로 감시의 무서움입니다. ‘보여지는 상태’가 일상이 되면,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니까요.”
둘은 근대건축물 거리에 있는 통조림 카페에 들어갔다.
스테인리스 조명 아래, 팥빙수와 통조림 빵이 놓였다.
오웰: “요즘은 모두가 말하죠. 하지만 그 말들이 진짜인가요?”
진우: “정보는 많지만, 깊이 있는 대화는 줄었어요. 감정적으로 부딪히고, 책임은 회피하죠.”
오웰: “언어가 폭력이 될 때, 자유는 핑계가 됩니다.”
진우: “그럼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오웰: “간결하게. 정확하게. 그리고 윤리적으로.”
진우: “윤리적인 언어… 그게 지금도 가능할까요?”
오웰: “가능합니다. 다만 대가를 치를 준비가 돼 있어야 하죠.”
오웰은 본격적으로 질문을 하려는 듯 들고 있던 음료를 한 모금 크게 마셨다.
오웰: “이 마을을 ‘시간여행’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뭡니까?”
진우: “과거의 공간을 걸으며, 그 시절 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오웰: “그렇다면 이 마을의 안내문과 해설은 누구의 시선으로 쓰였죠? 일본인? 한국인? 관광객?”
진우: “한국인의 시선이죠. 하지만, 각 나라가 쓴다면 다른 내용이 될 거예요.”
오웰: “바로 그겁니다. 언어가 시선을 만들고, 시선이 역사를 만듭니다.”
노을이 히로쓰 가옥의 창살을 붉게 물들였다.
오웰은 통조림 빵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한 입 베어 물고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오웰: “이 거리, 해가 지면 더 많은 이야기가 숨을 쉬겠군요. 그 이야기는 누가 기록하나요?”
진우: “아마… 오늘은 제가 하겠죠. 기록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오웰: “그렇다면, 진실을 지우지 말고 쓰세요. 감시보다 무서운 건 ‘침묵’이니까.”
진우: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군산의 여행지들은 안 가시나요?"
오웰: "추천해 주고 싶은 곳이 있나요?"
진우: "빵으로 유명한 이성당과 철길마을, 그리고 근대 역사박물관, 유명한 짬뽕집도...."
오웰은 손으로 신이 난 듯 말하는 진우를 제지하며
오웰: "그런데 그곳에도 여기처럼 CCTV가 많이 있나요?"
진우: "당연하죠, 이곳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은 모든 곳에 CCTV가 가득하죠."
오웰: "그렇다면 더 이상 여행을 할 수가 없군요..."
짧은 인사를 한 오웰은 주변이 신기한 듯 두리번 대며 거리를 배회했다.
그의 움직임에 맞추어 길거리에 가득한 CCTV들이 살아있는 듯 그를 감시하며 움직이는 것 같았다.
진우는 오늘은 기록하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오웰이 말이 기억에 남아 배낭에서 노트를 꺼냈다.
'군산, 시간여행마을.
말이 넘치는 시대에, 정작 중요한 말은 사라지고 있었다.
감시는 카메라 속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가장 열심히 감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