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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명상(徒步冥想) 1 - 고행과 명상

사진 : 13박 14일 장기도보 마지막 날 남항대교

by 전영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오늘 첫 글을 올립니다. 제 브런치스토리의 키워드는 자기계발, 영성계발입니다.

도보명상 연재글은 제가 전국을 다니며 도보명상을 하던 내용입니다. 부족한 글 입니다만 일독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코스 : 통영 ―32km 거제도 ― 32km 진해·을숙도 ― 12km 부산 남항대교, 영도(3박 4일)



함께했던 장기도보 길꾼들의 모습



│도보명상 시작하기│


오래전 전국을 도보하던 당시 70대 노인의 기사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오려 품속에 소중하게 간직했다. 2013년 당시 75세인 남상범 씨. 그는 평범한 직장생활을 접고 50대 후반부터 걷기 시작했다. 아내는 그를 보고 ‘미쳤다’고 했다. 그는 걷는 동안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무쇠 같은 팔다리를 포함한 건강을 얻었다.

남상범 씨는 2005년 11월부터 7번 전국을 걸어서 일주했다. 서울을 출발해 서해, 남해, 동해 바닷물에 차례로 발을 적신 뒤, 휴전선을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코스(약 2500㎞)다. 하루 30~40㎞씩 걸어서 석 달 20여 일이 걸린다. 2010년 11월까지 10번 돌아서 2만 5000㎞를 채우는 게 그의 꿈이다.

- 2009년 5월 16일 조선일보


남상범 씨는 2010년 10월 10일 전국 10바퀴 도보완주를 해내었다.

나는 품속에서만 간직하고 있던 남상범 씨의 전국 도보행을 보며 도보하며 명상(冥想)을 함께 해보기로 했다.

장기 도보는 생소해 인터넷을 뒤져 우선 도보동호회 프로그램을 따라다녔다.

진도에서 시작하여 부산까지 13박 14일간 남해 도보여행을 하는 '나길도'라는 걷기 동호회에 회원가입을 하고 참가신청을 하였다. 나의 휴가 전에 이미 시작된 도보라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은 통영에서 합류하여 3박 4일간을 부산까지 함께 도보하는 것이다. 나는 부랴부랴 짐을 꾸렸다.


하루 전 문인들과 소백산에서 1박 2일의 워크숍이 있었다. 2일째 되는 날 그들과 헤어져 나는 도보팀을 향해 출발하였다. 문인들은 '엄두가 안나' 함께 하지 못한다면서 장도를 축복해 주었다. 4년간의 도보명상(徒步冥想)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낮 12시에 출발하여 으슥한 밤 통영 숙소에서 장기도보 일행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당연히 나는 그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인연들이다. 그들은 80여 명의 대군으로 진도부터 출발해 통영까지 240여 km를 걷고 있었다. 일행을 알고 모르고가 무슨 문제인가.


무등의 세계


길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무등(無等)의 세계를 체험해 보려면 장기도보를 해볼 일이다. 처음 남모르는 이들도 티격태격하다가 서로를 맞춘다. 3~ 5일 지나면 도보꾼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루 23~ 30킬로씩 걷다가 쉬는 시간이면 누가 사장이고, 교수고, 공사장 날품팔이고 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치 훈련하다 길가에 앉아 쉬고 있는 예비군 모습처럼 무등이다. 길가에 주저앉아 다리 펴고 눕고 있는 모습들이 서로 비슷해진다.

등산, 여행, 자전거, 크루즈 등 수많은 ‘레저’의 종류 중 도보는 가장 거지의 일상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도보에는 보너스가 있다 - 걷는 만큼 평등의 가치를 누린다.

길을 걸어보라, 길은 누구나 동등함과 평등함을 배우게 해 준다. 사람은 원래 자유로운 존재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평등함도 당연히 누릴 수 있다.


그대들은 어디로 가는가?

왜 걷는가?


나는 화두(話頭)도 하나 짐 속에 집어넣었다. 그로부터 시작된 나의 도보명상은 4년 동안 주말마다 전국방방곡곡으로 계속 이어졌다. 주말마다 하루에 20~ 35킬로씩 1년 평균 1,500km, 4년 동안 약 6,000km를 걸었다. 월~ 금요일 평일도 매일 2시간 정도를 걸었으니 4년 동안 14,000km를 걸은 샘이다.

남해안 4일간의 도보 첫날, 통영에서 32km를 걸었다. 10여 일 동안 32도~ 34도의 여름 뙤약볕을 걸은 남자들의 얼굴은 건강한 구리 빛이다. 여자들은 수건을 목과 얼굴에 두르고 챙 넓은 모자를 쓰고, 그것도 모자라 선글라스를 끼고 코까지 덮는 마스크를 쓰기도 한다.


황경화 님


함께 했던 일행 중 황경화 님이 있었다. 일행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평생교직에 몸 담다가 65세에 도보여행을 시작하여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구 두 바퀴 반 정도의 길을 걸었다. 길꾼들에게 그녀는 할머니 스타다. KBS 도보 다큐 방송도 탔다.


통영을 지나 배를 타고 거제도로 들어가 섬을 횡단했다. 천천히 길게 걸으니 주위의 모든 것들이 달리 보였다. 길가에 펼쳐진 파란 논과 돌담장이 정겨웠다. 논 뒤에 바다가 바로 보였다. 오르고 내리는 등산과 달리 평지를 걷는 도보여행은 숨이 차지 않는다. 어디서든 많이 보아왔던 논길이 갑자기 친근하고, 얕은 담장과 길가 이름 모를 풀들이 살아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햇빛을 받아 초록으로, 하늘로 솟은 벼 너머로 어머니 치마폭 같은 푸른 바다가 비늘을 반짝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뭉클한 무엇이 가슴에서 솟았다.

아, 그동안 나는 많은 것을 놓치고 살고 있었구나.

자동차로 거쳐 지나가던 땅과 길, 풀, 꽃들 - 땅을 밟아본다는 것, 생명 가득한 흙과 스킨십한다는 것은 무얼까. 우리는 문명의 이기로써 땅을 보고 따지고 값으로 매기기만 했지, 내가 태어난 대지의 넉넉함이나 고마움 같은 건 생각지도 않고 휙 휙 지나온 세월들 아니었던가. 스피드 내어 건너가기만 하던 한강의 많은 다리들과, 경제적 효용가치나 차창을 스치는 멋진 풍광으로나 소용되던 땅과 길이었다. 우리는 그러면서 이웃들을 놓치며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길꾼들의 일상│


첫날 저녁쯤 거제도의 한 마을에 도착하였다. 80여 명의 대군은 8개 조로 나뉘고 각조의 조장은 해당조를 이끈다. 조별로 돌아가며 밥 당번을 정해 식사를 스스로 해결한다. 봉고차 1대가 일행을 따라다니며 짐과 식사와 간식을 운반한다. 숙소는 주로 마을회관이나 양로원, 찜질방 등을 이용한다. 절반은 각자 가져온 1인용 텐트로 야영을 한다. 14일 동안의 긴 여행에 교통비, 숙박비, 식비 등을 포함해 하루 1인당 드는 비용이 2만 원 정도이다. 걷고, 밥 해 먹고, 단체숙소나 개인텐트를 이용하니 절대 호사와는 거리가 멀다. 필시 고행(苦行)에 가깝다. 걸어보면 알 것이다. 튼튼한 체력은 필수다.


개인야영을 뺀 나머지 여성과 남성들은 마을회관 1, 2층과 옥상을 사용한다. 화장실과 욕실은 건물 통틀어 1층에 하나뿐이다. 차양이 가려지고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한 즉석 남성용 샤워 실을 건물 뒤쪽 담장 안에 순식간에 세워 남자들의 세면과 샤워를 해결한다. 식사 당번 팀은 먼저 도착하여 점심과 저녁 식사를 일행이 도착할 때쯤 준비, 완료한다.

아침 출발 시에는 마지막 점검 팀이 숙소를 돌며 분실물은 물론 화장실 휴지까지 깨끗이 청소한다. 도보 시에는 선발대와 중간리더, 후미 팀이 길을 안내하고, 만약의 사고에도 대비한다. 그 3개소의 리더를 ‘깃발’이라 한다. 모든 것이 일사불란하다.

내가 일행에 합류해서 본 첫 소감은 이들은 잘 훈련된 병사들 같다는 것이었다.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었고 불평자도 없었다. 1시간 도보하고 10분 쉬는 것은 철칙이었고, 이웃이 물집 잡히면 터주고 스포츠 테이프도 붙여주고, 먹을 것을 서로 살뜰히 나누어 먹었다. 길거리에서 처음 만난 이웃들이 서로서로 돕고 사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의 이웃이 죽는지 사는지 알 수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생활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도시생활의 문화는 아닐 것이다. 도보를 하는 이들은 언제부턴가 잃어버렸던 공동의 소유와 공동의 생활문화를 경험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도보 초기에는 갈등도 있었고 위치 이탈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한솥밥을 먹고 의식주를 함께 해결하고 고생하며 지내다 보니 자연 작은 공동의 문화가 갖추어졌다.


나는 그 첫 4일간의 남해도보 이후 3개의 한강다리를 건너 다음날 새벽까지 걷는 한강무박도보를 시작으로, 지리산 둘레길, 몽산포 모래해변길, 강원도 바우길, 변산 마실길, 계족산 황톳길, 새만금 왕복, 강화도 해안일주 등 첫 1년 동안 주말에 남한 땅 2,500km를 걸었다.

걸으며 침묵 수행을 한다. 그러면서 자연의 침묵을 배운다. 자연은 따로 수행하지 않는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살뿐이다. 하늘과 땅과 인간 중 인간만이 미완성으로 수행한다.

일행들은 무엇 때문에 돈 주고 사서 이 고생길에 들어선 것일까? 인생은 편안함이 주는 행복 외에 불편함이 주는 행복도 있다. 이들이 그것을 터득하는 것 같다. 어차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니 편안함과 불편함의 행복까지 모두 누릴 수 있다면 이들도 자기도 모르는 수행길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이런 길을 가면서 사부대중이 스스럼없이 하나가 되어 가고 있구나 -


도보는 신심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 반드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체력이 부족한 분은 장기도보에서 그것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고생하며 함께 오래 걸으면 조금씩 조금씩 가족이란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양발과 오른쪽 허벅지가 아프다. 그러나 길가 바람 한 점에 웃어본다. 길가 이름 없는 잡초가 즐거워 보인다. 인간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함박 웃는 모습인 것 같다. 그것도 자연 길을 걸어가며 가볍게, 가볍게 함박 웃는 모습 말이다. 웃는 자는 자연스레 자연을 닮을 것이다.

나는 손으로 염주를 굴리듯 글을 읇었다.


그대들은 어디로 가는가?

왜 걷는가?

길에서 만나는 누가 승(僧)이고 누가 속(俗)인가?

일체가 진아(眞我)라 했다.

천지인(天地人) 모든 것이 다 진아(眞我)라 했다.

나는 길을 걸으며 그것들을 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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