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늙은이

한번 아이였던 적이 없는 아이.

by 솜사탕수박라떼

매일 술 취한 아빠를 피해서 집을 나오기 일쑤였지만, 학교에 한번도 빠진적이 없었다.

학교에서 지난밤에 고단함을 티내지도 않았다. 학교에서만큼은 나도 친구들처럼 그냥 초등학생이길 바랐다.

그 전날 밤.

눈앞에 보이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술취한 아빠를 피해 간신히 우리가게 찬 시멘트 바닥에 몸을 뉘였지만, 아빠는 그 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듯 쫓아나와서 엄마와나 동생은 혼비백산 간신히 엄마차를 타고 옆동네 개울가로 피신을 했다. 아빠는 가게도 불 태운다며 석유 한통을 받아다가 가게 바닥에 들이 부었고 우리는 혹시 우리때문에 괜히 옆집까지 피해를 입을까 마음을 졸이다가. 다행히 불은 안붙이고 씩씩 거리며 집으로 들어가는 아빠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개울가 한쪽에 차를대고 쪽잠을 자며 한편으로는 빨리 아침이 왔으면, 또 한편으로는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아침이 되면 꼭 누군가가 나를 이 어둠에서 끄집어내 주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다가도 매번 지난밤에 고단함을 예외없이 들추는 햇살에 좌절스러웠다.


다른 날보다 더 힘든 밤이었다.


학교가기전에 석유냄새 폴폴 나는 가게 부엌에서 간신히 세수만 하고 학교에 갔다.

우리가 학교가면 혼자 남을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불안했다.

우리가 없는 사이에 아빠가 엄마한테 해코지하면 어떻게하지. 마음 한쪽은 엄마에 대한 걱정으로 발이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또 한쪽은 안전한 어른들과 있을 수 있는 학교가 너무 가고 싶었다.


그날은 학교에 있는 내내 맘이 불안했다. 다른날보다 컸던 소동이 과연 어제로 끝날까 싶었다.


아뿔싸!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집에 일이 있다고 연락이 왔어. 얼른 집에 오라고 하시는데 무슨일 있는거니?"

나는 그때 아무 말도 못하고 울었다.

어디서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것도 있었지만, 내발로 아빠가 있는 집으로 가야 한다는게 너무 무서웠다. 선생님은 내가 너무 우니까 더 묻지를 못하시고 다독여주시고는, 가방을 챙겨주셨다.


"야 너 왜울어? 괜찮아?"

교실을 나오는길에 친구들이 줄줄이 따라와 물었다.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항상 신나있는 내가 그러고 울어댔으니, 친구들도 속으로 참 이상하다고 생각 했을 것이다. 한마디도 못했지만 속으로는 '나 가기 싫어. 얘들아 나 좀 잡아줘.' 라고 만번은 외친 것 같다.


집 문을 여니.

아빠는 새파랗게 갈린 식칼을 배 위에 올려두고 "니 년들이 네 손에 뒤지기 싫으면 나를 죽여!!" 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지옥이 있다면 딱 이곳이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그 시퍼런 칼끝이 나를 향해 들이닥칠 것 같았다. 현관에서 엉엉울며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만 반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뭘 잘못했나싶은데, 그날 힘없는 여자 셋은 그냥 온갖 욕설을 듣고 공포를 견뎌야만 했다.


아빠가 욕하다가 잠들때까지 방구석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듣기만했다. 만화에서는 꼭 이렇게 힘든 순간에 구해주러 오는 이가 있던데. 나는 주인공이 아니어서 안구해주나 별의 별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학교 끝나고 친구들하고 조잘 거리면서 집에 오다가 떡꼬치하나 사먹고 애들 다 같이 들어가는 그 속셈학원에가서 공부하고 엄마한테 수학이 어렵다며 엄살 좀 부리고 싶은데. 매일 아빠 손에 생과사를 오가는 현실에서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그 아이는 더이상 아이가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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