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를 받아들이게 된 순간
오늘 섬으로 돌아가는 배는 유난히 흔들렸다.
바람이 세고, 파도가 높았다.
멀미를 '배가 아프다'고 표현하는 아들을 붙잡고,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데려갔다.
아이는 멀미에 울다 지쳐 잠들었다.
잠든 아이를 안고, 이불을 덮어주며 나 또한 몇 번이나 숨을 고르며
3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을 버텼다.
긴 연휴를 끝내고 다시 이 섬으로 돌아오는 길
이제 이 작은 배도 마지막으로 타게 되는 날이었다.
올해가 지나면 큰 배에 짐을 모두 실고 육지로 돌아오게 되겠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씩씩하게 잘 지내야지 다짐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또 달랐다.
이 감정도 이제 마지막이겠거니 하면서 항상 참 씁쓸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쌓인 빨래와 집안일을 처리했다.
아이는 오랜만에 돌아온 섬의 집에 적응하며,
조금은 낯설지만 또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겨우 모든게 고요해졌을 때,
낯익은 섬의 밤이 또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낯섦이, 나의 여러 감정과 생각을 건드린다.
이제 100일 남은 나의 섬 생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또 나의 시간이 흘러가겠지.
연휴 동안, 그리고 오늘도 오래전 친구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 서툴게 말하고 행동하다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멀어졌던 그 친구
아들을 낳고 제왕절개 수술 이틀째 되던 날,
"이제 손절하자"는 그 친구의 연락을 받았을 때
마음이 참 많이 아팠다.
이번 연휴에 다른 친구를 통해 그의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엔 씁쓸하고 다 내 탓 같았다.
나의 서툴고 부족했던 모습 때문에 멀어졌다고.
몇 년을 후회하며 그 때를 떠올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몇 년을 그렇게 후회하다보니,
충분히 그 친구에게 미안하고, 또 이해하다 보니
이젠 '그 때의 나를 미워하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엔 그것밖에 몰랐고
서툴지만 진심이었던 나도 결국 '나'라는 존재라는걸
이제는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시절의 인연도 이제는 멀리 흘러갔지만,
그래도 그 기억을 소중했던 시절의 추억으로 남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사람 사이의 관계는 꼭 화해와 이어짐으로 끝나지 않는다.
때로는 후회를 남기기도 하지만
나 자신과의 화해로 다시 시작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마무리 될 수 있다.
그 시절의 '나'를 통해
나는 조금 더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오늘 밤, 여전히 섬은 고요하다.
이제 조금 춥다.
하지만 이 파도가 예전처럼 두렵지는 않다.
이제는 그저 바라본다.
이 섬의 바다도, 그 시절의 나도.
지금의 나도, 앞으로의 나도
모두 내 삶이니까,
결국, 그 모든 순간이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