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 어디에 있었을까

사랑이 아닌 '나'로 존재하기 – 정체성 회복 및 자기 탐색의 여정

by 서하

연애가 끝나고 나면, 나는 항상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에는 분명했던 나의 모습이 관계가 끝나자마자 희미해졌다.

좋아하던 음식도, 듣던 음악도, 걷던 거리도 갑자기 낯설어졌다.


연애할 때에는 늘 '그 사람과 나'를 중심으로 일상을 짰다.

예를 들면, 메뉴를 고를 때, 그가 좋아하는 음식이 먼저 떠오르기도 하고

내가 듣던 플레이리스트 목록은 노래방에서 불러줄 노래 또는 같이 부르고 싶은 노래들로 구성되었다.

어디를 가도 함께 갈 그 사람을 늘 먼저 떠올렸고, 계절이 바뀌면 같이 갈 여행지를 먼저 상상했다.

그래서, 이별 후 그 사람이 사라진 뒤에는 그 계절조차 낯설어졌다.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의 휴일, 꿀 같은 늦잠을 자고 개운하게 일어난 아침이었다.

일어나 씻고, 밥을 먹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이 시간에 내가 뭘 하고 있더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를 할 때에는, 그와 카페에 앉아 있거나, 드라이브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연락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었을 시간.


하지만, 그날 나는 방 안에서 홀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저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공허함이 밀려왔다.

이전에는 공허함이 밀려오면 또다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애썼는데,

문득 이 공허함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오래 가져보기로 했다.

그 생각의 끝에서 처음으로, 나 혼자서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 나는 공허함을 새로운 인연의 시작으로 채우는 대신,

나를 대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으로 채워보고자 했다.

나는 작은 것부터 나 자신을 다시 알아보기로 했다.

커피를 어떻게 마시는 걸 좋아하는지,

내가 정말로 혼자 있을 때는 무엇을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지,

내가 진짜 좋아했던 건 '그 사람'과의 산책이었는지, 아니면 '산책' 그 자체였는지를 구분하는 연습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안에 내가 참 오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함께'라는 이름으로 내 취향을 밀어두곤 했고,

'연애 중'이라는 이유로 내 시간표를 양보하곤 했고,

사랑을 할 땐 늘 그 사람이 내 일상과 감정의 기준이었기에, 나는 나 자신을 두 번째로 놓곤 했다.


심리학에서 이 과정을 '개인화의 회복(Recovery of Individuation)'이라 부른다.
특히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관계 안에서 자기를 소모하고,
연애 후에는 '정체성 상실 상태(identity diffusion)'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치유의 시작은 '관계없는 나'를 다시 발견하고 정립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혼자되기'가 아니라, '내가 누구였는지를 기억해 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 밥을 먹는 시간을 만들었고, 산책을 할 때도 음악을 끄고 내 발소리에 집중했다.

거울을 자주 보려고 했고, 하루에 한 줄이라도 일기(일기라기보다는 오늘의 감정한 줄)를 썼다.

아무도 나를 바라보지 않는 순간에도 내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감각을 되찾고 싶었다.

처음엔 그저 공허함을 달래기 위한 의식 같았지만,

그렇게 나와 단둘이 있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조금씩, 아주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도 사라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연애에 전부를 걸고 살았던 사람에게는 이 당연한 문장조차 새롭게 배워야 하는 문장이다.

나는 이제,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내 하루를 알차게 채울 수 있다.

내 감정에 귀 기울이고, 나의 피로를 알아차릴 줄도 안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더라도 그 사랑 안에서 나를 잃지 않고 싶다.

나는 누군가의 여자친구이기 이전에 나 자신이라는 사람이어야 한다.


여전히 혼자 울고 있거나, 공허함을 지워줄 누군가를 만나려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면,

아래에 있는 것들부터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딱 일주일만 해도 확실히 개운해진 나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아래의 것들을 다 하진 않았지만

'혼자만의 공간에 머물기'가 스스로를 환기하고 돌보는 데에 도움이 되었고,

그 당시 독서를 '새로운 취미'로 가지며, 책에 엄청 빠져서 계속해서 읽었는데,

무작정 밀려오던 공허함이 줄어드는 효과가 정말 컸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갑자기 불안함이 밀려올 때나 내가 불안정한 것 같을 때엔 줄곧 책을 읽어 오고 있다.



['나'를 다시 만나는 7일 루틴]


하루 한 끼는 혼자 먹으며 음식의 맛에 집중하기

좋아하던 취미 혹은 새 취미 1개 시도해 보기

'혼자만의 공간'에 하루 10분 이상 머물기 (카페, 공원, 방구석 등)

거울을 보며 "나는 지금 괜찮아"와 같은 긍정의 말 1회 말하기

'그 사람 없이도 내가 좋아했던 것들' 리스트 5개 써보기

누군가와의 관계 대신, 오늘 하루 나에게 집중한 일 1가지 기록하기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 감정을 1 문장으로 표현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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