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똥멍충이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수익형 부동산을 항하여

by Mira

2015년, 전문가들은 아파트가 오를 대로 다 올랐다고 했다. 월세 잘 나오는 <수익형 부동산>이 낫다 는 의견이 강세였다. 더 이상 아파트로 돈 벌기 어렵다는 게 상식처럼 통했다.


아파트의 가격 상승은 어디까지나 "예측의 영역"이고 수익형 부동산은 매입가와 월세로 수익율이 딱 계산이 된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전문가들마다 한국 경제는 어렵고 일본처럼 부동산 버블붕괴가 올 수 있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나 역시 월세를 만들어 주는 부동산에 더 관심이 갔다.

소형 아파트, 오피스텔, 오피스 등

예측 가능한 수익구조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부동산과 분양사무소를 다녔다.


당시 광화문에 있던 우리 회사 사옥이 2~3년 후에 <마곡>이라는 곳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서울이지만 처음 들어 본 지역이라 여름 휴가 내내 여러 분양 사무소에서 상담을 받았다. 또 5호선 끝자락에 새로 들어서는 신도시 <미사>까지 종횡무진하면서 수익형 부동산을 검토했다.


처음으로 오피스텔을 분양받고 설레는 마음 반, 걱정스런 마음 반이었다.

과연 2년 후까지 사고 없이 임대가 가능할지?

그때까지 잔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

그때까지 우리나라 경제가 괜찮을지?

세계는 평화는 지켜질지?


1억짜리 오피스텔 하나 계약 하고나서 혼자 나라 걱정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온갖 뉴스에 민감해 지더라.


잔금 마련도 걱정되서 자동으로 긴축재정을 하게 되고. 점심시간에는 내가 분양 받은 오피스텔 지역에 대해 공부했다. 실제로 그 후로 10년 동안 해외여행은 안녕. 뻔한 월급쟁이 월급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투자는 “절약”이었다.


대출이라는 허들

분양사들은 레버리지를 통해 수익율을 극대화해서 3채 ~6채로 부동산 수량을 늘려가는 방식을 제안했다. 당시 이자가 2~3%였기 때문에 가능한 '이론'이었다.


나에게 가장 큰 허들은 바로 '대출'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대출 받으면 집안 망하는 줄 알았다.

남에게 지우개도 빌리지 못하는 소심한 극 I인 나에게 대출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미래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할 때는 그 자체로 불안하더니, 뭔가 일을 벌이고 나니까 결정해야 할 것들과 그 결정들이 온전히 '내 책임'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금리 인상율을 0.5% 단위로 계산 해 보면서 돌다리를 두들기고 또 두들기는 심정으로 대출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평생 살면서 내 이름을 그렇게 많이 써 보기는 처음이었다.


겉으론 이런 계약쯤은 여러 번 해본 사람처럼 새침하게 굴었지만, 속으로는 달달달 떨었다.


그런데 대출로 인해 자산이 크고 수익율을 극대화 하는 경험을 하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능력이고 그걸 잘 운영하는 것도 투자자의 스킬이라는 걸 꺠달았다.


너무 욕심을 내서도 안되고 너무 쫄아서 아무것도 못해도 안되고. 다행히 지금까지 대출로 인해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세상 돌아가는 걸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회사와 집만 오가며 무한 반복되는 일상 속에 갇혀 살다 보니, 어느새 나는 눈가리개를 쓴 경주마처럼 시야가 좁아져 있더라.


그런데 투자를 시작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도로 위 건물, 공사가 한창인 현장, 뉴스에 뜨는 숫자 하나에도 저마다의 욕망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더라.


어쩌면 자본주의란, 각자의 이익을 좇는 욕망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협업하는 시스템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흑백으로 나누는 단순한 이분법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익형에서 자산형으로 성장하기

내가 수익형 부동산에 몰두하는 동안 아파트는 2015년 후반부터 불장으로 바뀌었다. 몇달 사이에 억단위로 상승하는 걸 보면서 겨우 5%짜리 수익율을 위해 그렇게 고심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멍청하게 느껴졌는지.


눈 앞에서 놓쳐버린 기회들이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천정을 뚫고 날아가버렸다. 워낙 작은 씨드로 시작해서 아파트는 엄두도 내지 못했었는데.


어이가 없고, 의욕도 없고. 나는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은 건가, 내 인생은 저주라도 받은 건가. 온갖 슬픈 기분에 사로잡혀 무기력해졌다.


스스로에 대한 책망은 비애감으로 번지고 “나는 뭘 해도 안되는 사람”이라는 절망적 기분에 사로 잡혔다.


절망과 위로의 반올림

어느날 목동에 있는 부동산 소장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나의 똥멍청이 실패담을 이야기 하면서 훌쩍훌쩍. 그때 그 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나이가 많아도 이 분야를 모르는 분들 많아요. 지금 공부해 둔 것이 절대 헛되지 않을 거에요. 부동산 투자는 평생에 걸쳐서 하는 거니까 조급해 하지 말고 시장에 관심을 두고 지켜 보세요. 기회는 또 옵니다.


그렇다, 부동산은 대입시험처럼 한번 실패했다고 끝이 아니다. 씨드 머니를 키워나가면서 시장을 주시하다 보면 기회는 또 온다. 마치 큰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의 심정으로 마음을 일으켜 세우자.


그렇게 생각하니 더 오기가 나더라!

뭔데?

아파트는 왜 오르는 건데?

왜 어디는 별로 안 오르고 어디는 날아 오르는 건데?

지역별, 입지별, 상품별 가치를 비교검토하면서 나 만의 방식으로 공부를 이어갔다.


현장에서 배우다

수익형 부동산을 하나씩 처분하면서 씨드머니를 키웠고 아파트를 비롯한 재개발, 재건축 부동산에도 관심 갖고 서울 시내 동서남북을 훓고 다녔다.


재개발, 재건축 아파트의 미래가치와 수익율을 계산하는 것도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이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책이 아니라 현장에 있는 부동산 소장님들위 살아 있는 조언이었다.


어떤 지역에 관심이 생기면 주중에 인터넷으로 리서치를 하고 부동산 예약을 하고 주말이면 부동산 사무실에서 소장님들의 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서울과 경기권을 돌아 보니까 지도를 보는 눈도 생기고 각 지역별 입지 가치에 대한 식견이 생기더라.

개발 호재 뉴스를 듣다 보면,

"어, 저거는 될 거 같아."

"에이, 저거는 아직도 한참 먼 소리다."

나름의 판단을 할 수 있는 경험치가 쌓였다.


나는 수요가 많은 지역에 오피스텔 3개로 기본 머니트리(cash flow)를 가꾸면서 동시에 미래 가치가 있는 지역에 부동산을 자산(asset)으로 가꾸고 있다.


돌아보면 아쉬운 그림자

사실 내가 당시에 "배당금투자"나 "연금투자"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면 수익형 부동산에 그렇게 집중하지는 않았을 거다.


둘 다 경험해 보니, 같은 수익이라도 부동산은 세금과 각종 부대비용이 들어서 세후 수익율이 떨어진다. 연금투자는 정부가 장려하는 중장기 투자 상품이라 세제혜택이 많아서 이것부터 세팅하는 걸 권한다.


특히 주식은 문제가 생겨도 나만 슬프면 그만이지만, 부동산은 문제가 생기면 세입자에게 의도치 않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면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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