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둥그런 밥상의 초대

외할아버지와 겸상을 하게된 시작

by 마르치아



이 글을 쓰게 된 건, 오랜만에 혼자 밥을 먹던 날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문득 마음 한켠이 허전했다. 왜일까. 따뜻한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에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나는 혼자 밥을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것을. 누군가와 마주 앉아, 숨결 섞인 온기를 나누던 그 시절 밥상 위의 기억들이 가슴을 데웠다. 그리고 나는 이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단지 먹고 마신 기록이 아니라, 나를 길러낸 밥상의 세계에 대하여....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할아버지와 겸상을 해야 했다. 그건 강요가 아니라 초대였다. 작은 괴나리 호족반을 사이에 두고 앉으면, 밥은 식지 않았고 마음도 식지 않았다. 두 그릇의 김치찌개, 두 쌈의 상추, 두 젓가락의 젓갈이 오가는 동안, 우리는 단지 음식을 나눈 것이 아니라 온도를 나누었고, 말 대신 마음을 엮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밥상이라는 세계를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을 배우게 된 것이. 그곳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이란 그가 어떤 밥상에 앉아왔느냐로 그 결이 다르다는 것을. 어떤 이는 음식을 앞에 두고 기다릴 줄 알고, 어떤 이는 먼저 물잔을 들어 상대를 배려하며, 또 어떤 이는 조용히 밥을 뜨면서도 대화의 중심을 흐리지 않는다. 밥 한 끼는 그 사람의 인격을 그릇째 비추는 거울이었다. 밥상을 함께하면, 말보다 먼저 밥을 먹는 태도에서, 젓가락을 드는 방식에서, 심지어는 국물을 떠먹는 손의 결에서까지 그 사람의 살아온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래서 우리 집안에서는 밥상머리 교육이 곧 인생 교육이었다. 말 잘한다고 똑똑하다는 평을 듣지 않았고, 밥상 앞에서 예를 갖춘 자만이 사람답게 자란다고 여겼다. 한 사람이 완성되기까지 가장 오래 배우는 것은 말이 아니라 ‘자세’였고, 그 자세는 밥상에서 가장 먼저 드러났다. “숟가락을 들기 전에 상대를 먼저 보아라.” “입 안에 음식이 있을 땐 말을 삼가라.“반찬이 모자랄 땐 네가 먼저 손을 멈추어라.” 그 조용한 훈육 속에 사람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 밥상에서 생명의 순리를 배웠고, 절제의 미덕을 배웠으며, 무엇보다도 함께 앉아 있는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모든 것을 배웠다. 그 밥상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거칠고 외로운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날의 나는, 밥을 함께 먹자는 말에 가볍게 응하지 않는다. 밥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여는 예식이니까. 누군가와 밥상을 함께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의 세계로 조용히 발을 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 겸허한 밥상 위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났고, ‘세상’을 배웠다.


나는 독자들과 이 작은 할아버지와의 겸상과 세상 이야기, 우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비록 할아버지와

같이 한 세월이 5년 뿐이지만, 유난히 기억력이 좋은 나이기에 그 이야기를 이제는 풀어 보려 한다.

독자와 같이 나는 괴나리 호족반에 앉아 이 반찬 저 반찬을 설명하면서 따뜻한 대화를 이어 나가고자 한다.



#밥상인문학 #혼자밥먹다울컥일때 #사는게멋대가리없을때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