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찌개 없으면 안돼?
할아버지는 둥그런 상이 우주라고 불렀다. 우주는 하늘을 통해 배워야 하는데, 나는 밥상에서 우주를 먼저 배워 나갔다. 찌개는 해가 되었고, 그 옆에 생선반찬은 달이 되었다. 간장도 초장도 별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이 모든 것이 밥상에 조화롭게 위치하고 있어야 함을 강조하셨다.
“잘 봐, 아가. 이건 이글이글해야.” 할아버지는 찌개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낮에는 해가 이글거려. 해가 있어야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거란다. 마찬가지로 상 가운데에는 찌개가 떡하니 놓여야 완전한 밥상이야.”
내가 물었다. “할아버지, 찌개가 없으면 안 돼?”
할아버지는 싱긋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아니, 얘야. 해가 가려져서 흐린 날도 있고 비가 오는 날도 있지. 해는 없을 수도 있단다.” 하시며 허허허 웃으셨고, 그 대화를 듣던 다른 가족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할아버지는 밥을 꼭꼭 씹어서 먹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 밥을 꼭꼭 씹으면 단물이 나오는데 그 물이 얼마나 맛있는 물인지 우리 애기도 알아야 한다며 입으로 꼭꼭 씹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나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꼭꼭 씹고 오물오물거렸다.
밥상이 놓여지면 할아버지는 합장을 하시고 밥을 만드는 손을 축복하셨다. 나는 기도는 몰랐지만, 어딜 가나 밥이 놓여지면 할아버지가 하셨던 것처럼 두 손을 모으고 밥을 지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할아버지는 밥을 뜨기 전에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드는지 꼭 봐야 한다고 하셨다.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드시면 나도 따라서 수저를 들 수 있었다. 내가 수저를 드는 것을 확인하시느라 꼭 나와 눈을 맞춰주셨다. 그리고 수저를 먼저 국에 적셔야 했다. 수저가 국물에 젖으면 밥풀이 볼상사납게 숟가락에 붙지 않아 깔끔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 습관이 남아 있다.
할아버지는 그런 의미로 밥을 뜨기 전에 국물을 한 수저 뜨셨다. 그러면 수저도 적셔지고 밥이 들어오기 전에 입 안에 침이 생겨서 소화가 더 잘 된다고 하셨다.
우리 집에는 다른 집에 없는 월별 음식 달력이 있었다. 계절에 맞게 제철 재료로 상을 차리고, 그 기운을 섭생이라는 과정을 통해 몸에 저장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몇 월이 되면 꼭 먹고 가는 음식들의 목록이 있었는데, 난 오십이 넘어서도 할아버지의 음식 달력 목록에 있는 반찬들로 나도 모르게 아주 자연스럽게 장을 보고 상을 차린다.
음식이란 게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한 사람을 자라나게 하고 기운 나게 하고 소화를 통해서 나쁜 것들은 배설시킨다. 밥이 약이란 말이 있다. 밥만 잘 먹어도 건강하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다. 세월이 지나고 이 나이가 되니 삼시 세끼를 챙기는 일이 얼마나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밥을 짓는다는 수고는 자신을 살리고 사랑하는 이들까지 보살피는 작고도 위대한 기도와 같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이런 것들을 나에게 물려주셨을까?
할아버지는 반찬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억지로 좋아하지 않는 반찬을 먹이지는 않으셨다. 사람마다 타고난 천성이 있는데 그 기운에 맞게 좋아하는 반찬도 생기는 거라시며, 내 식성을 관찰자의 눈으로 사랑스럽게 가르치셨다. 절대 거기에는 강요라는 게 없었다. 그래서 음식을 접할 때 강요돼서 먹은 음식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먹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당근을 잘 먹지 않으면 “당근이 몸에 얼마나 좋니. 왜 먹지 않아?”라는 방식으로 음식을 대하지 않으셨다. 내가 잘 먹지 않는 것을 지켜보시다가 넌지시 “우리 경화가 당근 볶은 것은 좋아하지 않으니, 당근이 더 맛있어지게 다르게 만들어라.” 하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처음 대하는 반찬은 꼭 나 먼저 먹어보게 하셨고, 내 반응을 즐기셨다.
“그래, 우리 경화가 오늘 그 반찬을 처음 먹어보는구나? 어때? 그 생선은 저 멀리 바다에서 펄떡거리면서 놀다가 어부 손에 잡혀서 엄마가 시장에서 사 와서 소금을 촵촵 뿌려두었다가 구워서 낸 건데 어떠니? 우리 경화가 좋아하는 맛일까?”
할아버지는 반찬을 내게 소개하는 방식도 그 재료가 어떻게 우리 밥상까지 오게 되었는지 상세히 알려주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항상 생선구이가 반찬으로 나오는 날에는 건너편에 무 생채무침이 있었다.
“경화야, 생선을 한 번 먹으면 저기 무생채를 또 한 번 먹어야 소화가 잘된단다. 그래야 배가 안 아파.”
할아버지는 고등어 알러지를 걱정하시며 꼭 무생채 나물을 먹으라고 권하셨다. 어른이 되어서 생선을 굽는 날, 할아버지 말씀대로 무생채랑 같이 먹으니 정말 탈이 나는 일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밥을 흘리면 떨어진 밥풀까지 주워 드시는 분이셨다. 밥풀 하나도 정말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셨다. 천석꾼의 외동아들로 넉넉한 집안 환경에서 자라셨지만, 그 작은 밥풀 하나도 할아버지에게는 예외가 아니었다.
할아버지와의 겸상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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