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국물과 쫄깃한 반죽
비가 멈출 줄 몰랐던 날이었다
지붕 위를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굵어지고
창밖엔 회색 물결이
골목길을 조용히 삼키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앉아
빗소리를 따라 입술로 흉내를 내고 있었다
후르릉, 또르르, 또르르르르…
그때 할아버지가 부엌에서
커다란 양푼을 꺼내셨다
“경화야, 장마엔 수제비가 최고여”
그 말에
나는 슬리퍼를 끌며 부엌으로 갔다
할아버지의 손엔 밀가루가 묻어 있었고
그 반죽은 보드랍고, 따뜻해 보였다
내가 손을 뻗자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아직 네 손 작다, 이건 내가 찢을게”
“언제쯤 찢을 수 있어?”
“글쎄… 비 오는 날도 기다릴 줄 아는 나이가 되면, 그때쯤?”
그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멋져 보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죽은 하나씩
할아버지의 손끝에서 길쭉하게 늘어지다
냄비로 퐁, 하고 떨어졌다
그 소리가 좋았다
빗소리랑 꼭 친구처럼 어울렸다
국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고
무와 애호박, 파가 조용히 떠올랐다
마늘 냄새와 멸치 국물,
그리고 할아버지 손맛이 섞인 따뜻한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웠다
수제비를 앞에 두고 앉았을 때
창밖의 비는 여전했지만
우리 둘 사이엔 말없이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경화야, 수제비는 반죽이 다가 아니여.
국물까지 다 마셔야 완성되는 음식이여
남기면 안 돼.
이건 비를 먹는 음식이니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제비 한 숟가락을 떠넣었다
쫄깃했고, 따뜻했고,
속이 천천히 풀렸다
비는 그쳤다
하지만 나는 그 수제비 국물처럼
할아버지 말이 속에 오래 남았다
이따금
장마철이 오면 나는 그날을 떠올린다
지금도 가끔 수제비를 끓이다 보면
문득 할아버지가 뒤에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
“경화야, 비도 삶도
너무 다그치면 다 퍼진다
느긋이 끓여, 천천히 먹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빗소리 들리는 날이면
조용히 반죽을 손끝으로 찢는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국물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장마엔 수제비가 최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