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밥을 퍼 준다는 건(1)

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작은 스탠드를 샀다. 은은하게 감도는 주홍색 불빛이참 마음에 든다. 이경순과의 동거 이후 달라진 것이 많은데, 그 중 스탠드를 산 것도 변화 중에 하나라면 하나일 수 있겠다. 강제 독립을 하게 된 후로 작은 습관이 생겼는데, 그건 밤에 티브이를 틀어놓고 잔다는 것이다. 저녁 아홉 시의 책방 문을 닫고 올라와 티브이부터 켜는 것이 하루를 마감하는 나의 루틴이었다. 대충 씻고 나와서 티브이가 놓인 마루에 이부자리를 깐다. 이 채널 저 채널 무릎을 세우고 앉아 리모컨 버튼을 돌리다가, 마음에 드는 프로가 나오면 화면을 고정하고 그제야 이불 위에 드러눕는다. 그렇게 생각 없이 화면을 들여다보면 어느덧 까무룩 잠이 든다. 꿈속 장면인지, 드라마 대사들인지 모를 것들과 씨름을 벌이다가 동이 틀 무렵 부스스 일어나 뜨겁게 달아오른 티브이를 끄고 다시 잠을 청한다. 제일 달콤한 시간은 이때다. 허나, 잠에 들려고 너무 집중해선 안 된다. 부담돼서 역으로 정신이 또렷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배영 하듯 힘을 빼고 찬찬히 무의식에 정신을 맡겨야 꿀잠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과거의 일이다. 이경순과 살게 되면서 티브이는 끄고 잠은 내 방에서 자고 있기 때문이다. 조용한 방에서 고요한 밤을 즐기면서 뒤척이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 된다. 경순이의 방은 부엌 옆에 있는 작은 골방이다. 옥탑 방에서 이층으로 승급되었다. 허여사가 안방을 쓰라 해도 창문도 없는 골방을 고집하는 청승맞은 이경순. 얼마 없는 짐을 풀더니 낙원이 따로 없다며 저래 황소고집을 부린다. 어쨌든 소음 없는 한적한 밤의 고요를 알게 되면서 어린 시절 끼고 살던 라디오가 그리워졌고. 스탠드 아래에서 책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옥탑 방에서 기어이 고물 라디오를 찾아냈고 전자랜드에서 작은 스탠드 산 것이다. 분위기 전환에 스탠드의 효과가 커서, 책방에도 하나 더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더 사서 경순이 방에도 놓아야겠다.

경순이는 산부인과 검진 날이라 점심 장사를 끝내고, 병원에 갔다. 요즘 가을이 할머니랑 단짝이 되어서 밤낮없이 붙어 다닌다. 오늘 병원도 같이 갔다. 뭐 아들내외와 손녀가 없는 땅에서 마음 붙일 곳 생긴 가을할머니도 좋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살아 돌아온 것 같아 경순이도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지만,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인다. 밀면 가게에서 두 사람이 오순도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야기하는 소리가 책방까지 전해진다. 혹시 내 험담을 하는 건 아닐까? 벽에다 귀를 엿처럼 찰싹 붙이고 훔쳐듣기도 한다. 브레이크타임이면 어김없이 책방으로 건너오던 이경순은 이제 오지 않는다. 요즘은 가을 할머니와 함께 밀면 가게에서 시간을 보낸다. 예전엔 점심 장사가 끝나면 “뭐 먹고 싶어?” 하고 서둘러 물어보던 이경순이었는데, 이제는 묻지도 않고 그냥 점심을 차려 놓는다. 아니지, 요즘은 거의 가을 할머니가 점심을 차린다. 그러면 경순이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그 밥상을 받아먹는다. 이젠 내가 눈치 보며 식당으로 건너가, 객식구처럼 얻어먹어야 한다. 각별한 모녀 사이에 끼어든 불편한 기분이다. 허 여사는 뭐라도 얻어먹는 게 어디냐며, 심술 좀 그만 부리라 나무라지만, 성격 까칠한 것 보단 변심하는 게 더 나쁜 거 아닌가? 어쨌든, 이경순은 변했다.

“뭐가 이렇게 많아?”

카운터 밑에 놓인 쇼핑백을 발로 툭 차며 꿍얼거렸다. 가을할머니가 이경순에게 선물한 것들이다. 아침에 한 아름 안고 왔더란다. 임산부 영양제, 튼 살 크림, 손녀가 쓰던 신생아 용품들까지, 종이봉투가 찢어질 만큼 가득 들어 있었다. 가을할머니가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준다며, 쉴 새 없이 자랑하는 이경순. 참 꼴 보기 싫다.

“지 가게에 갖다 놓지, 왜 책방에 갖다 놓은 거야?”

발로 한 대 툭, 차며 짜증을 냈다. 혹시 나 보라고 일부러 그런 걸까? 친구라는 너는 퉁명스럽기만 한데, 만난 지 얼마 안 된 가을 할머니는 이렇게까지 정성을 쏟는다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 마치 나를 자극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짜증이 난다. 후아.... 사춘기 때도 감정이 미친년 널뛰듯 이렇진 않았었는데. 새벽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뜨거운 불에 안면을 가격 당하는 것 같은 고통을 공감 받으려면, 갱년기 여성 클럽 같은 거라도 나가야 하나? 외롭고 고독하고 아프고 우울하다. 대포주사 부작용으로 오는 폐경증상을 호소했음에도 이경순은 기쁨에 도취되어 나의 고통은 보지 못한다. 지는 장사도 잘되고, 가을할머니가 친정엄마처럼 챙겨주니, 좋겠지. 신나겠지. 여한이 없겠지. 정말 무신경하고 이기적이다.

“아우 씨, 무릎은 또 왜 이렇게 아픈 거야?”

무릎통증에는 덕지덕지 붙여놓은 파스도 소용이 없다. 내 사정을 이해하는 이도 없다. 더워죽을 것 같다가 또 갑자기 오한이 온다. 숨이 턱 막히다가 또 괜찮아진다. 육신이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 맞는 말 같다. 이래저래 힘들지만, 이경순에게 화풀이하는 건 그만둬야 한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경순이는 부단히 애를 쓰고 있으며 백이면 백 다 맞추면서 부모님보다 더 잘해주고 있으니까. 계산적이긴 하지만 경순이와의 동거로 실보다는 득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박현조! 못되게 굴지말자! 어린애처럼 굴지 말라고!”

눈을 감고 양팔을 위아래로 천천히 날갯짓을 하면서 나비를 부르고 있을 때, 책방의 문이 짤랑거리며 열렸다.

‘이경순이다!’

퍼뜩 눈을 뜨고 데스크에서 나왔다. 잘해줘야지, 친절하게 말해야지, 다짐하면서 문 앞으로 다가섰다.

“왔어? 애는 잘 크고 있데?”

경순이가 한쪽 어깨로 문을 여는 걸 잡아주며 상냥하게 웃어 보였다. 해보니, 친절하게 구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밥 먹었어? 오늘 저녁장사 하지 말고, 뷔페갈래? 허여사랑은 기분전환으로 뷔페가고 그랬거든?”

“어? 가을 할머니가 저녁에 추어탕 해주신데, 벌써 재료도 사오셨는데, 뷔페는 내일 갈까?”

“그래? 나 추어탕, 못 먹...”

“현조야, 나 알바생 생겼다? 오전에는 가을할머니가 도와주시고, 저녁에는 예영이가 하기로 했어. 반찬가게 사장님이 예영이 좀 일 시키라고. 나도 이제 배가 점점 불러와서 혼자 하긴 힘들잖아.”

경순이가 카운터 위에 낯선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한껏 들뜬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 잘 됐..”

“가방 예쁘지?”

내 말을 계속 똑똑 잘라먹으면서 하얀색 가죽가방을 들어 보이는 이경순이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미지만, 참자.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까칠해지려는 목소리 톤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샀어?”

“에잉 내가 무슨 돈으로... 가을 할머니가 며느리 주려고 샀는데. 자기 스타일 아니라고 거절했데. 집에 두면 쓰레기 된다고 했다는 거야. 아니 무슨 그런 싹퉁바가지가 다 있냐? 요즘 며느리들은 다 그런가 봐? 들어보니까 되레 가을 할머니가 시집살이하셨더라고.”

“그거야, 며느리 입장에서도 들어봐야 하지 않나?”

팔짱을 끼며 새초롬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이경순은 아랑곳없이 가을 할머니 역성을 들면서 열변을 토한다. 잘해주려 마음먹었던 게 솜사탕처럼 작아지려 한다.

“가을이 할머니가 우리 아기 태어나면, 가을이 쓰던 보행기랑 유모차랑 다 주신대. 정말 저렇게 인품 좋으신 분은 처음이야. 그리고 병원에서 가을이 할머니한테 보호자 분, 되시냐면서 친정어머니냐는 거야? 그랬더니 가을 할머니가 그렇다고 하셨다?”

“야! 이경순!”

별안간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내질렀다. 이경순이 놀라 가방을 품에 안았다.

“그만 좀 해! 만날 가을 할머니 가을 할머니!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야!”

분노는 발휘할수록 불꽃에 마른 장작을 더하는 것처럼 거세진다.

“뭐든지 마음대로 다 바꿔버리고! 네가 뭔데?”

처음은 내 의지였고, 나중은 나도 모르게 쏟아진 것들이다.

“싫다고! 불청객은 너랑 뱃속에 있는 걸로 족하다고!”

아..... 마지막 말은 하지 말걸. 후회해 봤자,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지 못하고. 깨진 병을 이어 붙일 순 없다. 씩씩대면서 얼어붙은 경순이를 쏘아보았다. 정적이 흘렀는데, 이상한 나라 폴의 세계관처럼 모든 것이 정지된 것만 같았다. 이럴 때 삐삐가 나타나 요술 봉을 휘둘러 사차원의 문을 열어주거나, 출입문의 종소리가 울려 퍼져 손님이라도 들어와 줬으면 좋겠는데. 겸연쩍은 얼굴만 삐딱하게 돌리고 한쪽 다리를 올렸다 내리면서 머리카락 한 줌 잡아 비비 꼬았다. 이번에 날린 펀치는 좀 더러웠다. 경순이는 녹다운이 된 건지 가드조차 올리지 않는다.

‘10 9 8 7 6....’

얼빠진 경순이가 뭐라도 날리기를 바라며 속으로 카운트를 세었다. 강펀치로 반격을 해도 이번에는 내가 깨갱 해줘야지 결심하며 경순을 바라보았다. 넋이 나가 보이는 그녀는 공격할 의지가 0.1프로도 없어 보인다.

‘빨리 뭐라도 날리란, 말이야. 이번에는 내가 깨갱 해준다니까?’

5 4 3 2 1, 대대대댕! 종이 울렸고. 경순이는 출입문을 열고 퇴장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내가 이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뭔가 좀 다르다. 닫힌 출입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냥 간다고?”

늘 상 내가 반칙으로 이겨먹어도. 웃어넘기거나, 못 들은 척하거나. 꼬리를 내리며 전전긍긍 내 밑으로 들어왔던 이경순이었다. 그런데 싸우는 중에 나가버린다고? 이렇게 당당하게 감정을 표출한 적은 없었다.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겠다. 쫓아갈까? 고민하다가 이내 메스꺼운 생각하나가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하아! 가을이 할머니 생겼다 이거지? 장사도 잘 되니까, 아주 눈에 뵈는 게 없지?”

배은망덕한 년! 은혜도 모르는 무식한 년! 근본 없이 천한 년! 입에 담지도 못할 막말을 쏟아내며 비좁은 헌책방을 종종걸음으로 휘젓고 다녔다.

“헌옷입고 노숙하던 거 데려와 사람 만들었더니. 뒤통수를 쳐?”

예쁘다고 데스크에 올려둔 조화 꽃을 내동댕이쳤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장미꽃. 엄마가 조화 꽃은 집안에다 두는 거 아니라며 당장 치우라고 했었다. 매일 새벽 예배를 드리고, 금요철야에서 아부지를 부르짖는 입으로, 풍수지리며 사주팔자까지 줄줄 꿰는 걸 보면, 참 기묘한 신앙혼합주의자가 아닌가? 지금 이런 비난을 할 때가 아니지! 순한 양 같은 얼굴을 하고서는, 여우 짓으로 사람 홀리는 나쁜 년! 그래 가라 가! 어릴 때도 도둑처럼 사라지더니, 늙어서도 저 지랄이지! 참담한 배신감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화산처럼 터질 것 같았다. 간신히 화를 누르고 데스크 앞에 앉았는데, 눈물이 솟구치면서 공포가 밀려왔다. 곧 슬픈 카타르시스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앙”

큰소리로 울어버렸다. 아무래도 조화 꽃처럼 집에 들여놓으면 안 될 것을 들여놓았나보다. 그래서 불청객이 내 요새를 무너뜨렸나보다. 모든 것은 이경순과 가짜 꽃 때문이다. 콧물 한 사발 크응, 우렁차게 풀고 있을 때였다.

“현조야~”

종소리도 나지 않을 만큼 조용히 출입문이 열렸다. 나는 급하게 울음을 막고 휘둥그렇게 뜬 눈으로 열린 문틈을 응시했다. 이경순이 무채색의 얼굴로 책방 안으로 들어온다. 천천히 발을 내딛어 손에 들고 온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니 난로 위에 검은 재를 쓸어 모아 버리고. 마른 수건으로 식은 난로를 털어냈다.

“현조야 김밥 먹자, 오이 많이 넣고. 참기름 듬뿍 발랐어. 어제부터 집 김밥 먹고 싶다고 했었지? 어묵탕도 끓여 먹자. 춥다 빨리 와.”

친절한 경순이의 음성에도 데스크 앞에 앉은 채로 고개를 푹 수그리고 요지부동을 부렸다. 부루퉁한 입술을 삐죽 내밀고 테이블 아래 두 손만 꼼지락 거렸다.

“어머님 김밥 맛이 날지 모르겠어. 참기름 많이 넣고, 오이랑 맛살 그리고 간은 맛소금으로 했어. 맞지?”

“저녁장사는....”

“오늘 문 닫지 뭐! 김밥 조금 먹고, 저녁에 뷔페 가자. 현조 여의도 좋아하지? 여의도에도 뷔페 있지? 나 한 번도 안 가봤다? 현조 덕에 뷔페 구경 좀 하자.”

“너 국수 먹었다면서, 가을 할머니랑....”

“나 안 먹었어! 뱃속에 애기가 다 먹었어!”

순하고 물러터진 이경순, 이제는 든든한 뒷백도 생겼겠다. 어엿한 맛 집 사장이겠다. 두고 보니, 어딜 가도 성공할 년 같은데. 혼자 사는 가을이 할머니한테 가도 됐을걸. 동부이촌동 부자 할마시더만.

“가을 할머니는....”

“갑자기 일이 생기셨대.”

“추어탕 먹기로 했다면서.”

“신경 쓰지 말고 와. 배고프잖아. 또 끼니 놓쳐서 속 쓰리다 하지 말고. 내가 그쪽으로 갈까?”

경순이가 무거운 몸으로 캠핑용 식탁을 낑낑대며 옮기는 것을 슬쩍 올려보았다. 일어나서 사과를 하던지, 식탁 옮기는 걸 도와주던지. 아니면 난로 앞으로 가는 것이 인간의 도리임에도. 임산부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적반하장 몰염치했던 그날처럼, 배짱을 부리고 앉아 있었다.

“현조야 내가 요즘 푼수 짓을 했지? 미안해. 너 힘들어하는 거 알면서. 내 기분에만 취해가지고. 나는 정말 나쁜 친구야!”

잔뜩 풀이 죽은 경순이는 손수 젓가락을 쥐어주며,

“오랜만에 할머니 사랑을 받아서… 마치 할머니가 다시 살아난 것 같아서, 좀 들떠 있었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소한 참기름 향이 나는 김밥 도시락을 내 앞에 조심스레 내려놓은 경순이는, 난로에 불을 지피며, 마치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